[직썰 / 최소라 기자] 코스피가 9개월 만에 2700선을 회복했다. 외국인 수급 개선과 대외 리스크 완화, 그리고 대선 정국의 ‘증시 부양’ 공약이 기대감을 키우며, “누가 당선돼도 오른다”는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도 앞다퉈 코스피 3000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치 프리미엄의 반영은 빠르지만, 제도화는 더디다. 기대가 실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딜레마 속에서, 코스피 3000은 현실이 아닌 ‘심리의 거울’이 되고 있다.
◇착시로 부풀려진 ‘정치 프리미엄’
29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0.49포인트(1.89%) 오른 2720.64에 마감하며 2700선을 다시 넘었다. 외국인의 순매수 전환과 글로벌 불확실성 완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시장은 이미 ‘정치 프리미엄’을 선반영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앞다퉈 증시 부양 공약을 꺼내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코스피 5000 시대”를 언급하며 ▲상법 개정 ▲주가조작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제시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장기투자 인센티브 ▲대통령 직접 IR 활동 등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정책 방향만 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이지만, 실제 입법 구조와 실행 가능성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심성 공약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제도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공약은 쏟아지는데, 법안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의 기대와 현실은 늘 엇갈려 왔다.
◇‘정책 테마 장세’에 올라탄 낙관론
증권가도 낙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KB증권은 하반기 코스피 목표치를 2890으로, NH투자증권은 3000으로 제시했고, 신한투자증권(상단 2850), 키움증권(2380~2880) 등도 상단을 높였다.
가장 먼저 반응한 업종은 증권이다. 이달 들어 KRX증권지수는 24.8% 급등하며 업종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래에셋증권(23.2%), 한국금융지주(9.1%), SK증권(9.4%) 등도 강세를 보이며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실적 기반보다는 정책 기대감에 의존한 ‘테마 장세’ 성격이 강하다. 정책 수혜 기대를 미리 주가에 반영한 뒤, 실현되지 못하고 조정을 겪은 과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낙관이 기대에 그친다면, 조정은 현실이 된다.
◇외국인 귀환, 구조적 전환은 아직
외국인의 ‘사자’ 전환도 상승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5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글로벌 통화정책 완화 기대와 함께, 한국 증시의 상대적 저평가가 수급 개선을 자극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대외 불확실성 완화도 한몫했다.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며, 글로벌 교역 정상화 기대가 커졌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동력을 잃은 보호무역 정책”이라면서 “외생 변수 개선이 증시 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외국인 수급이 구조적 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기 모멘텀이 아닌, 제도와 거버넌스 개선 같은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만큼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대선 이후, 실현력의 시험대
정책 공약은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NH투자증권 김병연 연구원은 “연초 민주당이 추진했던 슈퍼 추경안의 일부가 차기 정부에서 다시 상정될 수 있다”며 내수 회복 기대를 언급했다.
실적 반등 기대는 유통, 소비재, 온라인쇼핑, 건설 등 내수 업종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상 도소매와 건설업은 역사적 저점에 도달해 있어, 정책 모멘텀에 따라 반등 가능성이 있다.
건설업종의 경우 삼성E&A 등 일부를 제외한 주요 업체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배 수준으로, 저평가 매력이 존재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그러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고금리 조달 부담은 여전히 잠재된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닫힌 문 앞에 선 코스피 3000
증시는 이미 정치 프리미엄을 선반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선언이 제도화로, 기대가 실현으로 이어지려면 정치 이벤트를 넘어서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공약은 넘쳐나지만, 입법은 정체돼 있고, 기대는 앞서지만 실물은 더디다. “누가 당선되든 오른다”는 환상이 아니라, “당선 이후 무엇이 달라지느냐”가 시장의 본질적 질문이다.
코스피 3000은 다시 거론되지만, 그 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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