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유럽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테슬라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비야디(BYD)의 약진이 두드러지며 유럽 완성차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 완성차 업체들도 선전하고 있지만 현재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전략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시장조사업체 자토 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 28개국에서 전기차(EV)는 총 14만4200대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도 7만4520대로 31% 늘어났다. 전체 신차 등록 대수는 107만7122대로, 이 중 전기차와 PHEV가 차지하는 비중은 26.1%에 달한다. 유럽 내 친환경차 중심 시장 전환이 뚜렷하게 나타난 셈이다.
유럽에서 친환경차가 주목 받는 이유에는 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시행하는 강화된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가 영향을 미쳤다. 2025~2027년 기간 동안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15% 이상 감축하도록 정하고, 기준을 초과한 완성차 업체에는 초과 배출 1g당 95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비중을 확대하며 본격적인 전환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규제 영향으로 올해 1∼4월 기준으로는 유럽연합(EU) 내 전기차 판매량은 75만9325대로 작년 동기 대비 27.5% 늘었다. 같은 기간 EU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0.3% 감소한 447만737대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전기차와 PHEV 중심의 수요 쏠림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중국 BYD가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BYD는 지난달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7231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6083대를 판매하며 급성장했다. 특히 전기차 부문에서는 월간 기준으로 처음으로 테슬라를 제치며 주목받고 있다.
BYD의 대표 PHEV 모델인 ‘실 유(SEAL U)’는 지난달에만 6083대가 판매돼 해당 부문 1위에 올랐으며, 1~4월 누적 판매량은 1만6268대로 전체 PHEV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성과는 상계관세 등 유럽 내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현대차의 친환경차 판매는 투싼 HEV와 PHEV를 합쳐 6054대, 코나 HEV 및 EV는 총 5071대였다. 인스터(캐스퍼 일렉트릭)는 2446대, 아이오닉 5는 1387대였다. 기아는 EV3 외에도 니로(HEV·PHEV·EV) 4189대, EV6는 1441대를 유럽 시장에 공급했다. 전체 판매량 기준으로는 현대차·기아가 여전히 시장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의 전기차 및 PHEV 확대 속도가 빨라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빠른 제품 기획과 다양한 중저가 모델 투입으로 유럽 소비자 수요에 즉각 대응하고 있다”며 “국내 브랜드는 가격과 차급에서 선택지를 더 늘려야 시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YD는 ‘돌핀’, ‘씰’, ‘실 유’ 등 다양한 EV·PHEV 모델을 유럽 시장에 투입하며 라인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헝가리 남부 세게드에 연간 20만대 규모의 유럽 첫 전기차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5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지 생산이 본격화되면 상계관세를 회피하면서도 전기차 브랜드로서의 친환경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어, 향후 중국 브랜드의 유럽 내 입지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속에서, 현대차그룹이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제품과 서비스 전반에 걸친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유럽 소비자들은 가격 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중저가 시장을 겨냥한 모델 다변화와 적기 투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과 싸울 수 있는 EV1·EV2 같은 중저가 모델 라인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그룹은 유럽 내 이미 확보된 정비망과 브랜드 충성도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며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에서는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만큼, 차량 판매 이후 정비·충전·지원으로 이어지는 전반적인 소비자 경험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서비스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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