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정부가 최근 한미 간 통상협상이 '비관세 장벽'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확장되는 가운데, 협상의 파장이 국민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의뢰해 비공식 통상 협의에서 제기된 미국 측 요구사항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 이는 본격적인 협상 국면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예비적으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7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미국이 지난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2차 한미 기술통상 협의에서 처음으로 농산물, 기술, 의약, 국방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한 직후 시작됐다.
특히 소고기 수입제한, 쌀 저율관세할당(TRQ) 물량,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환경규제,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제한, 약가 결정구조, 무기 수입 시 기술이전 문제 등, 사실상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 Report)에 담긴 내용 전반이 '협상 테이블' 위에 올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산업부는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통상조약법)에 따라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상현안에 대한 사전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통상조약법은 외국과의 조약 체결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경우, 국회 보고 등 엄격한 법적 절차를 밟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측은 30개월 이상 연령 소고기 수입 제한 철폐, 쌀 TRQ 확대 등 민감한 농산물 이슈 외에도 자국 기업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다양한 규제와 제도를 문제 삼고 있다. 구글 정밀 지도 반출 제한 조치나, 의약품 약가 책정 과정의 투명성 요구, 방위산업 거래에 있어 기술이전 조건 확대 등은 단순한 시장 접근성 문제를 넘어 한국의 규제 체계와 산업정책 전반을 건드릴 수 있는 사안들이다.
정부는 이번 협의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협상 목록'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NTE 보고서나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제기돼온 문제들이 이번에는 명시적으로 협의의제로 등장하면서, 향후 미국이 이를 실질적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부는 6월 3일 치러질 한국 대통령 선거 일정과 맞물려 민감한 의제에 대한 구체적 결론은 차기 정부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국가 간 통상 협상의 기초자료를 준비하는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협상 시한이 임박한 만큼, 산업부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통해 각 시나리오별 경제 파급효과, 산업별 이해관계, 국익 손익 분석 등을 면밀히 검토 중이며, 이 과정에서 농민단체, 소비자단체, 산업계 등 다양한 이해 주체들의 의견도 청취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한미 협의 결과에 대해 조만간 국회에 비공개 형식으로 보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어떤 형태로든 통상조약법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국회의 감시 및 입법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한편, 대외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협의가 단기적으로 결론에 이르기보다, 차기 정부의 대미 통상 전략의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제 안보' 중심 통상 기조와 한국의 내수 보호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과정은 상당한 정치적, 외교적 조율이 요구될 전망이다.
이번 한미 간 협의가 향후 FTA 수준의 구조적 조정으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제한적이고 단기적인 절충안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협상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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