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정현 기자]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의 집단적 법적 대응이 본격화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개인정보위를 통한 집단분쟁조정과 민사법원을 통한 집단소송 등 두 갈래로 권리 구제에 나서고 있다. 다만 관련 법 체계가 미비해 대규모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개인정보위원회는 지난 14일 접수한 SKT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한 100명의 개인정보 집단분쟁 조정 절차를 내달 중순 개시하겠다고 28일 밝혔다. 개인정보위는 조정 개시후 추가 집단분쟁 신청 접수, SKT에 대한 분쟁조정위 조사, 조정안 작성, 당사자들의 수락 확인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60일 이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민사 소송보다 신속해 빠른 피해 구제를 원하는 피해자들이 대거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소비자원을 통한 분쟁조정절차도 본격화되고 있다.
개인정보 분쟁조정은 개인정보 유출 등 피해를 입은 정보주체가 손해배상·침해중지·원상회복·재발방지 등을 분쟁조정위에 요구해 법원 소송보다 신속하게 조정안을 받을 수 있는 절차로 50명 이상의 정보주체에게 유사한 형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선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SKT가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면 기업은 조정을 신청하지 않은 나머지 SKT 이용자를 대상으로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보상 계획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용자는 조정에 동의하고 보상을 받은 것이므로 민사소송에서의 실익은 줄어든다.
다만 SKT가 조정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미지수다. 당사자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분쟁조정제도는 '법적 강제성'이 부족해 한쪽이라도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조사가 끝나게 된다. 실제로 지난 2021년 페이스북 집단분쟁조정 당시 분쟁조정위는 181명에게 각 30만원의 손배금을 지급하라고 조정안을 내렸지만 기업이 이를 거절하면서 일단락됐다.
개인정보위원회 관계자는 "모든 분쟁은 자율적 의사에 진행되는 사항이어서 어느 정도 강제력을 띄게 되면 '분쟁조정'의 의미를 벗어난다. 사업자에도 고난, 침해의 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모든 분쟁은 자율적 의사에 따라 진행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강제력이 부여되면 ‘분쟁조정’ 본래의 의미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다”며 “이 경우 사업자에게는 권익 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당수 법무법인이 SKT 유심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참여자를 공식 모집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스타트를 끊은 법무법인 로집사부터 무료 소송을 진행하는 법무법인 대건(14만 명), 법무법인 대륜(1만), 가나다, 더 에이치, 샤, 거북이, 로고스 등이 SKT 피해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또 여러 법인들이 네이버 카페와 연계해 낮은 수수료를 광고하면서 피해자 모집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만 SKT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과거 판례에 비춰볼 때 이들 법인들은 예상 보상금액 범위를 10만원에서 30만원 정도로 예상한다. 지난 2012년 해커에 의해 KT 가입자 8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에서 1심은 1인당 10만원 배상을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KT가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기준을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며 KT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2018년 KT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집단소송 참여 금액은 무료에서 최대 11만원으로 다양하다. 전반적으로 승소 시 성과 보수 10%를 별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패소시에는 착수금으로 SKT에 패소비용을 내는 시스템이다.
개별 SKT 이용자들이 법무법인을 통해 SKT와의 손해배상 청구에서 승소한다면 이들 이용자들은 배상액을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SKT 이용자는 효력에서 배제된다. SKT의 과실이 입증될 시 전체 SKT 이용자들이 보상을 받은 방법은 개인정보위의 집단분쟁조정이 성사되는 것 뿐이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한국은 아직 집단소송법이 도입되지 않아 승소를 하더라도 소송한 신청인 상대로만 효력이 발생한다. 집단소송법이 있다면 큰 로펌이 대표로 결과를 얻은 후 그 효력이 SKT 사용자 전체에게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원고가 여럿이고 피고가 한 명인 소송은 '다수 당사자' 소송이며 집단소송은 원고를 상대로만 효력이 발생하는 소송이라는 설명이다. SKT 이용자들이 SKT에 피해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다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개인정보유출 사고 피해자들을 위한 단체소송 관리시스템 '로퍼미'를 개발한 법무법인 예율의 김상겸 변호사는 "법무법인들은 승소 시 성과 보수를 별도로 받기 때문에 모집 인원이 많을수록 좋다. 개인정보유출 사건은 금액이 문제지 승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업체가 충분한 노력을 해서 정보보안에 힘을 썼는지가 쟁점인데 해커의 침입을 막지 못했다는게 과실이 없을 수가 없다. SKT가 원하는 건 시간끌기로 보인다. 몇 년후 승소 판결이 나오면 여파가 줄어들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법무법인에 따라 위약금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SKT가 모든 소송에 대해 대응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SKT는 해킹 피해자에 대한 무료 유심 교체, 유심보호서비스 제공 등 사후 조치를 시행 중이고 고객신뢰위원회를 통해 소비자 피해 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다만 피해자들은 보다 실질적인 배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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