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6·3 대선은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 이후 최초의 방탄유리가 등장한 대선이다.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지역감정과 광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광주 유세에 나서자 청년과 대학생들이 '김대중'을 연호하며 시위를 진행, 노 후보를 향해 돌을 집어던지고 신문지에 불을 지르는 등 유세장이 엉망이 됐다.
피를 흘리며 말을 이어가던 노 후보의 주변으로 경호원이 손에 잡힐 크기의 방탄유리를 들고 정면을 가린 수준의 보호였다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좌·우·앞 3면을 가로 1m 크기의 방탄유리로 가린 채 유세 차량에 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3㎏ 가량에 달하는 방탄조끼까지 직접 착용한 채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민주당의 공직선거법 개정과 대법원장 청문회 등을 엮어 '방탄 입법'을 주장하며 이 후보를 향해 '방탄 후보, 독재자'라며 연일 거친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는 이 후보의 방탄조끼, 방탄유리,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유포죄 개정안 등 '방탄 3종 세트' 공세를 이어가며 "방탄 독재를 심판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후보의 과감하고 강성조의 발언들은 대선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중도층의 막판 표심을 잡기 위해 자신의 청렴하고 결백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대비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는 과거 자신의 발언인 '미스가락시장', '공산 국가' 등의 발언에는 저자세로 사과한 반면 상대방인 이 후보를 향한 발언 수위는 '범죄자, 독재'라며 발언의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가는 곳마다 방탄조끼 미착용 인증하는 金
"범죄자는 감옥가라"며 강성 발언 퍼부어
김 후보는 연일 이 후보의 방탄조끼를 비난 소재로 삼았다. 그는 21일 경기권 유세 중 파주에서 "저는 경호원도 필요 없다, 죄지은 사람은 감옥에 앉아 있으라, 더운데 조끼 입고 방탄유리 안에 들어가 유세하는 것보다 차라리 감옥 가서 앉아 있는 게 안 좋겠나"라는 말로 이 후보를 직접 겨냥했다.
이어 자신의 선거 운동복을 들춰 보이며 "저는 방탄조끼가 없다"며 "죄지은 사람이 제일 편한 데가 어딘가, 죄 많은 사람은 감옥에 앉아 있으면 국가가 교도관들까지 다 배치해 확실하게 방탄해 준다"며 감옥과 방탄을 같은 선상에 둔 발언을 했다.
이어 "대법관들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행위)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이) 허위사실 유포죄 자체를 없애려 한다"며 "전 세계 이런 방탄 입법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방탄 독재,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김포 사우문화체육광장 유세에서도 "죄를 지은 사람은 감옥에 앉아 있으면 방탄조끼가 필요없다"고 다시 한 번 말했으며 고양 화정역 문화광장 유세 현장에서도 "방탄유리, 방탄조끼, 대통령실 경호원도 필요 없다, 저의 방탄조끼는 바로 여러분"이라며 선거 운동복을 들췄다.
전날인 20일 서울 강서 유세에서도 외투 지퍼를 내리며 방탄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하며 "도둑이 자기가 잡혀갈 것 같으니 도둑이라는 죄를 없애버리는 무지막지한 독재자가 있다, 저는 방탄조끼도 경호도 필요 없다, 총 맞을 일 있으면 맞겠다"며 자신의 떳떳함을 강조하며 이 후보를 겨누는 발언에도 중점을 뒀다.
같은 날 서울 송파구 유세에서는 "서울동부구치소가 송파구에 있다, 죄 많은 사람은 방탄조끼를 입을 것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국가 방탄 시설, 교도소에 가서 앉아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등 이틀 연속 '범죄자, 독재, 방탄'을 말하며 이 후보를 겨냥했다.
특히 경기 북부 지역은 20일 이 후보가 하루 먼저 유세를 펼쳤던 장소로 김 후보는 다음 날 바로 같은 장소들을 방문해 이 후보의 동선 꼬리물기에 나서며 '반(反)이재명' 정서를 자극했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두 후보의 대결인 만큼 최대 접전지로 예상되는 경기지역 유세 현장에서는 보다 센 발언을 통해 이 후보의 '방탄, 과잉 경호'를 문제 삼으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21일에는 경찰에 경호 인력 축소도 요청해 경호를 강화한 이 후보와 대비되는 모습을 강조했다.
국민의힘도 비판 가세 "자신만의 벙커에 들어간 李, 국민이 두렵나"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도 이 후보의 방탄유리 설치에 비판이 쏟아졌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0일 페이스북에 "이 후보가 수천만원 혈세를 들여 방탄 유리막을 설치했다더니 과연 온통 상식을 벗어난 망상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며 "무책임한 과대망상의 선동가에게 국정 운영을 맡겨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이 후보가 연일 방탄복을 입고 3중 철통 경호에 돌입하더니 이제 국민 앞에 방탄유리로 둘러싸 자신만의 '벙커'를 만들었다"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국민이 그렇게 두려워서야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온 나라를 방탄의 늪, 정쟁의 수렁에 빠뜨려 놓고 더 숨을 곳이 필요한가"라며 "그 정도면 차라리 스스로 감옥에 가는 것이 가장 평온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앙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어제 이재명 후보의 선거 유세 장면을 보고 경악했다, 지금 이재명 후보가 뭐가 그렇게 위험한가"라며 "스스로 그렇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본인이 지은 죄가 많아 그럴 것"이라며 이 후보를 비난했다.
신 대변인은 "저희가 보기에는 정치 쇼가 절정에 달했다고 느낀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예전에 독재자들이 그랬듯 바주카포로도 들어올 수 없는 방탄차를 타고 다니고 관저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국민을 항상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라며 "이를 통치 수단으로 삼겠다는 이재명식 통치의 예고편"이라며 이 후보를 '독재자'라고 힐난했다.
그는 "국민이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 선거 운동을 어떻게 하는 거냐,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해방 이후 지도자들도 100만 명, 200만 명 모아놓고 유세할 때 그런 거(방탄유리) 안 했다"며 "정치라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 있으면 계란도 맞고, 돌도 맞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목 찔린 정치인 두고 장난하나"…이재명, 김문수 직격
이 후보는 김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며 "방탄유리가 제 잘못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1일 인천 부평역 북광장 유세에서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경호원들이 경호하는 가운데 유세해야 하는 게 이재명과 민주당의 잘못이냐"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선거운동복 안에 흰색 방탄복을 입은 이 후보는 연단 좌우에 설치된 방탄유리를 가리키며 "반란과 내란, 정적 제거 음모가 계속되고 있다"며 자신을 향한 테러 위협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김 후보가 '방탄조끼 입고 방탄유리 치는 사람이 대통령 돼서야 되겠나'라는 비판을 두고 "반성해도 모자랄 자들이 국민을 능멸하고 목이 찔린 상대방 정치인을 두고 장난해서야 되겠나"라고 맞받아쳤다.
이 후보는 '조봉암 사법 살인'을 재차 언급하며 "다시는 누구도 사법살인을 당하지 않고 칼에 찔려 죽지 않고 총에 맞아 죽지 않는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진정한 민주국가를 세우자"고 말했다.
이어 "총으로, 칼로, 법으로, 펜으로 밟히면서도 멀쩡하게 살아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것은 바로 위대한 국민 때문"이라며 "다시 정상적인 출발을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여러분의 투표지만이 열 수 있다"는 말로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한민수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도 21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테러를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김문수 후보의 입, 너무도 위험하다"며 "테러 위협을 겪고 있는 이재명 후보를 비난하면서 '총 맞을 일 있으면 총을 맞겠다'는 말로 극우 내란 후보임을 과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를 당하면 테러를 당할 일을 한 것이냐, 이는 테러를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망발"이라며 "증오에 빠진 극우 내란 후보의 반인륜적인 망언에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테러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9일부터 가동된 방탄유리막은 민주당이 국내 제작사에 자체적으로 의뢰해 구비했다. 정면 유리 높이는 지지대를 포함해 1.9m에 달한다. 가로 길이 약 1m에 두께 약 5㎝, 무게는 50㎏가량 된다. 민주당은 방탄유리막을 두 세트로 만들어 유세장마다 이동 설치하고 있다.
방탄유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유세 때 사용한 바 있다. 국내에선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로 광주 유세에 나섰을 때 정면을 막는 용도로 한 차례 사용됐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15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 현대차가 제공한 방탄차를 유세 중 타고 다녔지만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오른 연단에서는 방탄유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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