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소영 기자] 2025년 5월, 국내 닭고기 산업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발생으로 전면 중단되면서 국내 가금류 산업은 전례 없는 공급 충격에 직면했다. 정부는 즉각 브라질 리우그란데두술(Rio Grande do Sul) 주를 'AI 발생지역'으로 지정하고, 브라질산 가금육과 관련 생산물의 반입을 차단했다.
브라질은 우리나라 전체 닭고기 수입의 88%를 담당하던 최대 수입국이다. 이번 조치는 국내 식품 가공업계뿐 아니라 축산업 전반에 걸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산업 전반에서 공급 패러다임의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그 중심에는 국내 최대 육계기업인 하림과 중견 가공업체인 마니커가 있다.
하림, 위기 속 ‘공급 확대’로 정면돌파
하림은 이번 사태를 수급 불안이 아닌 공급 기회로 해석하고 있다. 그룹 내부적으로 ‘공급량 확대’ 계획을 전면 가동했다. 5, 6월 출하물량을 평년 대비 105%로 확대하고 7, 8월에는 110%까지 늘릴 계획이다. 가금 사육부터 도축, 가공, 유통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된 하림의 사업 구조는 위기 대응에서 단연 강점을 드러냈다.
하림은 브라질 대체국으로 태국과 미국을 지목하고 수입선 다변화에도 착수했다. 그러나 핵심은 수입 보완이 아닌 내수 공급 체계 강화다. 하림 관계자는 “국민 단백질 공급망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출하량 확대와 유통 안정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곧 주가에도 반영됐다. 수입 중단 조치 이후 하림 주가는 연중 최고가를 경신하며, 시장의 기대 심리를 입증했다.
마니커, 수입 충격의 ‘반사이익’. 그러나 지속 가능성은 미지수
마니커는 브라질산 닭고기와 직접적 연계성이 낮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전체 생산물의 대부분이 국내산 닭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도축보다는 가공에 집중된 구조 덕분에 수입 중단에 따른 원물 부족 현상에서 부분적으로 자유롭다.
이 같은 반사이익은 곧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5월 20일 마니커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국내 닭고기 수요가 단기적으로 폭등할 것이고, 그 반사이익이 중견 가공기업에 집중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과 달리 실질적인 수급 여력이나 생산 능력의 확대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마니커는 최근 몇 년간 구조조정과 재무 리스크 해소에 집중해온 탓에, 공격적인 생산 확대 여력은 충분하지 않다. 또한 자체 도축 시설이 없고, 협력 농가와 도계장에 의존하는 구조는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입 대체재’의 현실과 유통 혼란
브라질산 닭고기는 그간 국내 외식업계와 가공식품 산업에서 ‘가격경쟁력’의 핵심 원료였다. 1kg당 수입단가가 국내산 대비 60% 수준에 불과했던 만큼,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와 편의 식품 제조사들은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순살 치킨, 닭강정, 치킨텐더 등 가공제품에 대체재를 투입하려면 품질 안정성과 원가 상승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로 인해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공식품 유통업체 간 공급 재협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일부는 메뉴 조정 또는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태국과 미국산 닭고기를 대체 수입원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국내 사육 농가에 대한 긴급 방역 및 생산장려책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미 출하된 닭의 생육 기간과 냉동 물류 여건을 감안할 때, 단기 공급 차질은 피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구조적 기회인가. 일시적 반사이익인가.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일회성 수입 차단으로 보기 어렵다. 고병원성 AI는 전 세계적 기후변화, 야생조류의 이동 경로 변화에 따라 주기적이고 확산적인 흐름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공급망과 가금 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하림은 이 구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국내 1위 사업자의 입지를 다시 한번 공고히 했다. 반면 마니커는 단기 주가 상승의 혜택은 얻었지만, 중장기 성장 전략과 생산 역량 확보 없이는 이 기회를 지속하기 어렵다.
이번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 중단은 국내 육계 산업에 ‘의도치 않은 시험대’를 제공했다. 하림은 구조적 대응 능력과 자생적 공급력이라는 본질적 경쟁력을 입증했고, 마니커는 수입 공백의 틈새에서 주가 반등이라는 찰나의 반사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다음 구조 개편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 변화의 방향을 읽고 준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다음 시장의 주도권은, 단순한 유통이 아닌 ‘위기에서 체계로 전환한 기업’ 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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