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대한민국 고용시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기업의 신규 채용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확보가 사실상 멈췄고, 고용시장은 장기 불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신규 일자리 감소가 뚜렷해지며,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 분야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2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기준 임금 근로 일자리 중 신규 일자리는 244만4천 개에 그쳤다. 이는 2018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전년 동기 대비 10만8천 개가 감소했다. 2022년 2분기부터 이어진 신규 일자리 감소세는 무려 11개 분기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규 일자리'는 기존 인력 외에 기업체 설립, 사업 확장 등으로 인해 새롭게 생긴 일자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해당 수치의 감소는 단순한 고용 축소를 넘어, 국내 기업들이 채용을 회피하거나 미래 확장 계획조차 꺼리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이는 고용시장뿐만 아니라 국가 전반의 경제 활력에도 치명적인 악재다.
신규 일자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산업은 건설업과 제조업이다. 두 산업 모두 고용유발효과가 크고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로 여겨졌지만, 이번 통계에서는 오히려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건설업의 경우 2023년 4분기 신규 일자리는 45만3천 개로, 1년 전보다 5만8000 개 줄었다. 이는 2023년 2분기부터 7분기 연속 이어진 감소세다. 통계청이 발표한 취업자 수 기준으로도 건설업은 지난해 5월 이후 12개월 연속 줄어들고 있어, 사실상 산업 전반이 '장기 침체'에 빠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제조업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4분기 기준 제조업 신규 일자리는 3만8000 개 감소하며 11분기 연속 줄어들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조적 변화다. 최근 제조업 경기 회복이 일부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 업종은 고용유발계수가 낮아 전체 고용시장 회복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실제로 올해 1∼4월 제조업 취업자 비중은 15.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대한민국 산업의 중추였던 제조업의 고용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고용 위기는 내수 기반 서비스업까지 번지고 있다. 숙박 및 음식점업의 신규 일자리는 1년 전 24만4천 개에서 23만1천 개로 1만3천 개 줄었으며, 도매 및 소매업도 같은 기간 동안 1만6000 개 감소했다.
이는 2년 넘게 지속된 저성장 국면과 더불어 2023년 12월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 등 국내외 불안정성이 겹치면서 소비심리 자체가 얼어붙은 데 따른 것이다. 고용시장은 결국 경기와 소비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 셈이다.
그나마 증가세를 보인 산업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이다. 2023년 4분기 신규 일자리는 4만3천 개 늘었다. 하지만 이 분야는 공공 일자리, 단기 계약직, 시간제 고용 비중이 높아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일자리 양극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안정성과 지속성이 낮은 단기 고용에 의존할수록 중산층의 기반은 약화되고, 장기적으로 소비와 투자 모두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고용시장 위기가 현실로 닥친 지금, 정치권의 대응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대선에서도 '일자리 해법'은 실종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공정한 노동환경 조성, 산재보험 제도 개선, 하청노동자 교섭권 보장 등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인 고용 확대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대기업 신입 공채 장려 등을 언급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체적 전략 없는 아이디어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의 고용시장이 구조적 위기를 맞이하면서 정치권과 기업, 나아가 사회 전반의 공동 대응과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확대와 고령층 재취업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예고했지만, 실효성 있는 실행 방안과 지속 가능한 재원 마련은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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