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기준금리는 2%대로 떨어졌지만, 금융소비자들은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세를 반영해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대출금리는 되레 오름세다. 금리는 완화됐지만, 금융비용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시차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제2의 시스템 리스크’로 규정하며 내놓은 고강도 규제 강화가 결정적 요인이다.
금융위원회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고도화와 총량 규제 강화에 이어, 오는 7월부터 수도권의 은행과 제2금융권에 ‘3단계 스트레스 DSR’을 적용한다. 이는 소득 대비 상환능력을 더욱 정밀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실수요자의 주택담보대출까지 사실상 규제 범위에 포함된다.
이처럼 금융규제 기조가 통화정책의 방향성과 충돌하면서, 금융시장에 역설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은 대출금리를 인상하거나 우대 조건을 축소하며 수요 억제에 나선 셈이다. 그리고 은행은 정부의 규제 시그널에 맞춰 대출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대응을 하고 있다.
이미 시장도 반응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스타아파트담보대출’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69~3.89% 수준으로 조정했다. 카카오뱅크, 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들도 마찬가지로 주담대 금리를 인상하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총량 압박이 본격화된 이후 금리를 내릴 여지가 거의 없다”며 “인하 폭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출 실수요자들이 체감하는 압박은 더욱 크다.
수도권처럼 집값이 높은 지역에서는 DSR 강화로 대출 한도가 줄고, 금리는 올라 이자 부담만 늘어난다. 예컨대 6억원대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연봉 6000만원의 30대 직장인은 기존에는 3억 원대 대출이 가능했지만, 최근 규제 환경에서는 2억원 이하로 줄어들었다. 적용 금리도 3.7%를 넘어, 연간 이자만 1000만원 이상이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부채 안정에 대한 정책 신호를 분명히 주기 전까지는 현 수준 이상의 규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은행권 내에 넓게 퍼져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를 경제의 뇌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은 대출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축은 기준금리가 아니라, 정부의 규제정책으로 받아들인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보다 규제 시그널이 대출금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됐다”고 짚었다.
결국 기준금리는 내려갔지만 대출금리는 오르는 이례적 현상은 시장의 왜곡이 아닌, 거시건전성 정책이 통화완화정책을 상쇄하고 있는 구조적 결과다.
정부는 부채 억제를 위해 대출을 조이고, 은행은 이에 대응해 금리를 올리며, 금융소비자는 그 틈에서 혜택 없이 부담만 떠안는 구조다.
‘금리가 내려갔다’는 발표는 숫자에 불과할 뿐, 실수요자에게 실질적인 의미를 주지 못하는 상황.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정책이 조율되지 않는다면,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는 소비자에게 닿기 어렵고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릴 수 있다. 정책의 시그널이 엇갈릴 때, 고통은 가장 약한 고리인 실수요자에게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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