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올해 축구계는 ‘성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불(成佛)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고 번뇌를 벗어나 부처가 되는 걸 말한다. 다만 일본에서는 성불이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일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아무래도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데 ‘한풀이’가 결부되다 보니 특히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성불의 다른 의미가 알음알음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현재 한국에서 성불은 ‘숙원사업 해결’ 정도로 통용되고 있다.
특히 축구계에서는 오랜 염원 끝에 우승을 차지한 팀들이 눈에 띈다. 이탈리아에서는 볼로냐FC1909가 코파 이탈리아(이탈리아 FA컵)에서 AC밀란을 1-0으로 꺾고 1973-1974시즌 이후 51년 만에 주요 대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불과 5일 전 리그에서 1-3으로 패한 강호 밀란을 꺾은 것이어서 볼로냐 팬들에게는 더욱 짜릿했을 승리였다.
이러한 성불 흐름은 유독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선 지난 3월에는 잉글랜드 카라바오컵(리그컵) 결승에서 뉴캐슬유나이티드가 리버풀을 2-1로 꺾고 창단 133년 만에 첫 리그컵 우승에 성공했다. 주요 대회만 놓고 봐도 1954-1955시즌 잉글랜드 FA컵 우승 이후 70년 만이다. 비록 리그컵이 잉글랜드 주요 트로피 중에서는 가장 무게감이 낮지만, 뉴캐슬 팬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우승에 뛸 듯이 기뻐했다.
FA컵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 11일 펼쳐진 FA컵 결승에서 크리스탈팰리스가 맨체스터시티를 1-0으로 제압하고 창단 120년 만에 처음으로 주요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번 FA컵은 기존 ‘빅6’가 힘을 못 쓰는 등 우주의 기운이 요상하게 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팰리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흐름에 방점을 찍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 강호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데에 있다. 밀란은 2024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이탈리아 슈퍼컵) 우승을 제외하고도 불과 3년 전에 리그 우승을 했다. 리버풀은 이번 시즌 리그를, 맨시티는 지난 시즌 리그를 정복했다.
유럽 5대 리그 1위들이 비교적 최근 우승을 맛본 팀들로 결정남에 따라 이변이 속출하는 토너먼트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있다. 당장 아직 우승이 결정되지 않은 DFB 포칼(독일 FA컵)도 창단 120년 만에 첫 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빌레펠트와 18년 만에 주요 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슈투트가르트의 맞대결이다.
그렇다 보니 축구계 시선은 유럽대항전 결승전으로 쏠린다. 공교롭게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유로파리그, 컨퍼런스리그 모두 기존 강호와 다크호스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UCL에서는 창단 첫 우승에 도전하는 파리생제르맹이 UCL 우승 3회에 빛나는 인테르밀란을 상대한다. 컨퍼런스리그에서는 창단 118년 만에 첫 UEFA 주관대회 우승을 노리는 레알베티스가 UCL, 유로파리그, 컵위너스컵(폐지) 우승이 2회씩 있는 첼시와 맞붙는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그중에서도 유로파리그 결승전이 가장 관심도가 높을 것이다. 현재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홋스퍼와 과거 박지성이 뛰었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두 팀은 리그에서 각각 17위와 16위로 ‘최약체’지만 유로파리그에서는 왕좌에 군림할 기회를 잡았다.
성불이라는 표현에 보다 걸맞은 팀은 토트넘이다. 토트넘은 1970-1971시즌 유로파리그(당시 UEFA컵) 초대 우승팀이지만, 1983-1984시즌 이후 41년 동안 유럽대항전 우승이 없었다. 우승 자체도 2007-2008시즌 리그컵 이후 17년 동안 없었다. 맨유가 2016-2017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당장 지난 시즌 FA컵을 거머쥔 것과 대조된다.
현재 토트넘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주장인 손흥민도 아직까지 주요 대회 우승이 없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연령 제한이 있는 대회다. 손흥민은 2016-2017시즌 리그에서, 2018-2019시즌 UCL에서, 2020-2021시즌 리그컵에서 흘렸던 눈물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애스턴빌라전 선발 복귀전을 치른 만큼 유로파리그 결승에서도 선발로 나서 우승을 겨냥한다.
한때 ‘영혼의 듀오’였던 케인의 성불은 손흥민 입장에서 큰 힘이 된다. 케인은 지난 시즌 토트넘을 떠나 독일 최강팀 바이에른뮌헨으로 이적했지만 무관에 그치며 ‘무관제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최종적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오랜 무관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케인은 손흥민과 토트넘에게 우승 기운을 실어보냈다. 우승 기념식 이후 인터뷰에서는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다. 모든 공은 토트넘 스스로 만든 것”이라며 “우승하길 바라며 경기를 지켜보겠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남은 한 경기는 토트넘 구단에 있어 의미가 아주 크다. 최선의 경기력이 나오길 빈다. 몇 주 후 경기를 다시 시청할 때 토트넘의 우승을 볼 수 있다면 모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독일 ‘스카이스포츠’와 인터뷰에서도 "리그에서 토트넘에서는 힘든 시즌이었지만 역사상 최고의 시즌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라며 "선수들과 스태프들 사이에 여전히 많은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팬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다. 맨유는 더 큰 경험이 있기에 힘든 경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토트넘은 어떤 수준에서도 경쟁할 수 있으며 결승에 진출할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계속 지켜보겠다. 최선의 결과가 따르길 바란다"라고 친청팀을 응원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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