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지영 기자] 롯데손보 사태를 계기로 후순위채 조기상환 관행에 균열이 생기면서, 보험사들의 자본 조달 환경이 한층 더 녹록지 않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본성 증권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 위축도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지난 8일, 2020년 발행한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에 대해 조기상환(콜옵션) 절차에 착수했지만, 금융감독원(금감원)의 불허함에 따라 상환 시점이 하반기로 밀렸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후순위채 상환 관련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중도상환을 검토했지만 금융감독원과 논의한 결과 중도상환 보류를 결정하게 됐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자본확충을 실행해 중도 상환 일정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롯데손보 사례는 자본 여력과 건전성 지표에 따라 콜옵션 일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험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후순위채는 변제 순위는 가장 낮지만, 발행 기관이 파산하지 않는 한 만기에는 원리금을 상환받을 수 있는 채권이다.
통상적으로 발행 3년~5년 후, 콜옵션을 통해 조기상환되는 것이 관례이다. 보험사들은 이를 전제로 기존 채권을 새 후순위채로 차환해 왔다. 그러나 이번 롯데손보 사례를 계기로, 자금 여력이나 건전성 지표에 따라 조기상환 일정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점이 시장에 각인됐다.
금융당국은 보험사가 후순위채를 조기상환할 경우, 보험사의 자본 건전성을 가늠하는 신지급여력제도(K-ICS) 비율을 150% 이상 유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의 킥스는 2023년 말 213.2%로 금융당국의 권고치(150%)를 상회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에는 154.59%까지 하락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콜옵션을 예정대로 행사할 경우 15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연내 '기본자본 K-ICS' 기준을 도입할 경우 롯데손보의 재무건전성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기본자본 K-ICS 비율을 적용하면 롯데손보의 킥스 비율은 -1.6%로,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MG손해보험(-7.6%)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기본자본 킥스비율과 관련해 아직 금융당국의 공식 기준이나 산식이 마련되지 않은 단계이다"며, "현재 경영상황이나 펀더멘탈에 문제가 없기에 자본 확충 필요성을 판단하기에는 다소 이른감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에서 기본자본 킥스 비율 기준 권고기준을 맞추지 못해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유예기간을 부여하기로 한 만큼 추후 롯데손보는 금융당국의 제도 변경에 발맞춰 대응할 예정이다"며, "롯데손보는 건전성 하락의 원인이 급격한 제도 변경으로 인한 불가피한 것이며 경영상황이나 펀더멘탈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새 회계제도 도입 이후 롯데손보의 건전성과 수익성이 동시에 흔들린 점이 이번 사태의 근본 배경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롯데손보는 무·저해지 상품 해지율 산정에 있어 금융당국이 권고한 원칙모형이 아닌 예외모형을 적용했다. 다만 롯데손보은 예외모형을 적용했음에도 불구 지난해 순이익이 242억원으로, 2023년에 비해 91%나 하락했다. 만약 원칙모형 적용 시 당기순손실 329억원으로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실무표준안을 통해서 원칙모형이나 예외 모형 둘 다 선택할 수 있게 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경험 통계를 통해 가장 적합하고 합리적인 모형을 택한 것이고 이 부분은 사업보고서에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롯데손보 사태를 계기로, 연내 콜옵션이 도래하는 보험사들의 채권 발행 환경이 한층 더 어려워질 수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킥스 비율이 150%대를 유지하고 있는 보험사들의 경우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자본성증권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보험사를 중심으로 후순위채 발행 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보험업계에서 콜옵션 행사 시점이 도래하는 자본성증권 규모는 총 9832억원에 달한다. 이를 내년 말까지 확대하면 3조2000억원 규모로 불어난다.
올해 안에 콜 시점이 도래하는 보험사의 자본성증권을 보면 ▲푸본현대생명(650억원) ▲흥국화재(400억원) ▲흥국생명(800억원)의 후순위채를 비롯해 ▲신한라이프(3000억원) ▲동양생명(3482억원) ▲메리츠화재(1050억원)의 신종자본증권 등, 총 6곳이다.
이 가운데 푸본현대생명은 콜옵션 행사일이 다음달이다. 지난해 말 기준 킥스비율은 157.3%로, 금융당국 권고선인 150%를 웃도는 수준이다. 롯데손보와의 격차도 불과 2.7%포인트에 불과해, 유사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롯데손보 사례는 자본성증권 조기상환 과정에서 킥스 비율 등, 재무건전성 지표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기상환을 계획하는 보험사들은 충분한 자본여력을 갖추고, 투자수요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으로 조기상환 기준이 킥스 130%로 낮아질 예정이지만, 산출 기준은 오히려 더 엄격해지고 있는 추세다"고 전했다. 이어 "자본여력이 부족한 보험사는 높은 금리를 부담하거나 계획한 물량을 모두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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