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앤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토트넘홋스퍼에 와서 줄곧 공격축구를 주창해왔다. 주제 무리뉴와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거치며 수비에 무게추를 둔 축구에 진절머리가 난 토트넘 팬들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를 선호했다.
단적인 예가 지난 시즌 첼시와 리그 11라운드다. 당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미키 판더펜과 제임스 매디슨이 부상당하고, 크리스티안 로메로와 데스티니 우도기가 퇴장당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극단적으로 높은 수비라인과 강렬한 전방압박을 포기하지 않아 팬들을 비롯한 세간의 찬사를 받았다. 현지 매체들조차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낭만’을 칭찬하며 우리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 않은지를 성찰할 정도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은 포스테코글루 감독임이 드러났다.
그런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최근 자신의 축구를 일정 부분 내려놓았다.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결승을 5일 앞두고 치른 애스턴빌라와 경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로파리그 결승에 대한 모의고사 성격이 짙었던 경기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높은 수비라인과 강한 전방압박 대신 주로 하프라인 밑에서 4-4-2 수비 조직을 갖춰 상대를 유인하는 전법을 구사했다. 분명한 선수비 후역습이었다.
그만큼 우승이 간절하다. 사실 토트넘은 유로파리그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실리축구를 펼쳤다. 보되글림트와 유로파리그 4강 2차전이 그러했다. 1차전을 통해 2점 차 우세를 점한 토트넘은 보되글림트 원정에서 무리해서 수비라인을 올리는 대신 수비에 주력하고 역습으로 활로를 찾았다. 실제로 토트넘은 점유율 31%로 주도권을 보되글림트에 내주면서도 슈팅 8회(보되글림트 7회), 유효슈팅 3회(보되글림트 2회)로 효율적인 공격을 통해 2-0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러한 변화는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우승을 위해 낭만을 버렸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토트넘은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창설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미 단일 시즌 리그 최다패인 21패와 리그 최저 승점(현재 38점, 최대 41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리그 17위로 PL 이후 최저 순위도 유력하다.
유로파리그 우승은 리그에서 아쉬움을 일거에 털어버릴 기회다. 이번 시즌 토트넘은 유로파리그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며 결승까지 올랐다. 레알소시에다드, 올랭피크리옹, 아틀레틱클루브 등 강호들을 연달아 꺾고 올라온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비하면 아인트라흐트프랑크푸르트를 제외하고 유럽 5대 리그 팀을 토너먼트에서 만나지 않는 운도 따랐다.
유로파리그에서 토트넘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비라인을 내리고 속공으로 성과를 내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상기한 보되글림트전을 비롯해 토너먼트에서는 1, 2차전 중 한 경기는 무조건 실리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오래전부터 ‘어느 팀이든 2년차에 우승’이라고 말해왔는데, 이를 증명할 마지막 기회인 만큼 신중한 축구로 트로피에 가닿으려 한다. 토트넘 경질이 가까워진 이때 우승컵을 들고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손흥민에게도 선수비 후역습 전략은 반가운 일이다. 우선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가장 뛰어난 결정력을 발휘할 때는 토트넘이 역습 위주 축구를 구사할 때였다. PL 득점왕을 차지한 2021-2022시즌을 비롯해 손흥민은 자신이 상대 뒷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때 훌륭한 공격력을 보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 이전 가장 공격적인 축구에 가까웠던 마우리치오 포체티노 감독 역시 손흥민에게는 상대 뒷공간을 공략할 수 있게 전술적 보조를 해줬다.
손흥민이 예상치 못하게 부상으로 한 달가량 휴식을 취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유로파리그 결승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난 빌라전 손흥민은 선발로 나서 74분간 경기를 소화했는데 체력에 한계점이 오는 듯했던 3월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수비 진영부터 상대 페널티박스 부근까지 스프린트를 해도 정교한 패스가 가능했다.
유로파리그 결승은 손흥민을 믿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팀에 창의성을 불어넣는 매디슨과 데얀 쿨루세프스키가 모두 시즌 아웃이 됐기 때문에 현재 토트넘에 남은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습을 통한 손흥민의 마무리다. 시즌 내내 손흥민을 측면에 고립시켰어도 단 한 경기만 손흥민을 골잡이에 가깝게 배치한다면 토트넘이 2007-2008시즌 잉글랜드 리그컵 이후 17년 만의 주요 대회 우승, 1983-1984시즌 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 후 41년 만의 유럽대항전 우승을 이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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