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자동차 대미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상징으로 꼽혔던 '수입차 25% 관세'가 현실화되며 국내 완성차 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 4월 한국의 미국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0% 가까이 감소했고,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재고 확보 전략에도 불구하고 하반기부터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4월 한국의 미국 자동차 수출액은 28억 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9.6% 감소했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의 최대 수출 시장인 만큼 이번 수출 감소는 전체 자동차 산업에도 직격탄이 됐다. 한국의 4월 전체 자동차 수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3.8% 줄어든 65억 3000만 달러에 그쳤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현대차다. 현대차의 4월 대미 수출량은 5만 1148대로, 전년 같은 달보다 20% 줄었다. 코로나19 여파가 컸던 2020년 4월 이후 처음으로 5만 대 선이 무너졌다. 기아와 한국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대미 수출이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감소의 원인으로 미국의 수입차 고율 관세 부과 본격화와 함께 현대차 조지아 신공장의 본격 가동을 꼽았다. 미국 내 생산이 늘면서 수출 물량은 줄었지만, 현지 생산 전환만으로는 관세 리스크를 모두 상쇄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수출 감소가 곧 미국 내 판매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현재 미국에서 완성차 기준으로 약 3.1개월치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달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내 판매량은 총 16만 2615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3% 증가했다.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관세 부담을 반영한 차량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업계에서는 하반기 미국 내 자동차 판매가격이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다음 달 2일까지 미국 판매가격을 동결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가격은 결국 시장이 결정한다"며 인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가격이 오르면 미국 소비자의 수요 위축은 물론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현대차로서도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현지 생산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의 연간 판매량 170만 대 중 절반 이상인 100만 대가 여전히 한국 등에서 수입되고 있어, 전체 차량의 60% 가까이가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받는 셈이다.
설령 올해 미국 내 생산량을 100만 대까지 끌어올리더라도 여전히 약 70만 대는 관세 부과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관세 리스크를 완전히 회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는 캐나다와 멕시코 시장에 수출하던 미국 생산 차량을 전량 미국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캐나다와 멕시코 시장은 한국과 멕시코 현지 공장을 통해 물량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재조정해 미국 수출분의 관세 영향을 줄이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급망 조정 외에도 직접적인 비용 절감 조치에 착수했다. 그 일환으로 미국에서 제공해오던 신차 고객 대상 무상 수리 프로그램을 올해 말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차량 가격 인상 외에 브랜드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조정함으로써 수익성 악화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이처럼 미국 관세 부과의 충격은 단기적인 수출 감소에 그치지 않고, 국내 완성차 산업 전반의 전략 변화와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유지해온 '수출 중심 구조'에서, '현지화 생산 및 전략적 시장 분산'으로의 본격적인 전환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다.
이번 상황은 단순한 일시적 통상 변수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발 보호무역 강화는 향후 글로벌 자동차 시장 전반에 걸쳐 구조적 변화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이번 관세 여파를 단순히 '미국 변수'로만 보지 않고, 유럽·중남미 등 타지역 수출 전략 재정비와 함께 '제2의 현지화'를 가속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처럼 가격경쟁력만으로 미국 시장을 돌파하긴 어렵다"며 "친환경차, 고급차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과 함께 글로벌 리스크에 대비한 다각적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 현실화는 단순한 통상 이슈가 아닌, 한국 자동차 산업이 마주한 중대한 기로다. 한국차의 글로벌 경쟁력은 이제 단순한 기술력이나 품질을 넘어서, '정치적 무역 환경'을 어떤 전략으로 돌파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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