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지나 5월 중순에 접어들면 식탁에 오르는 채소의 무게가 달라진다. 특히 습하고 더워지기 전까지는 향이 강하고 수분 많은 나물이 제격이다. 미나리 역시 이 시기 즐겨 찾는 식재료다. 한국에선 찌개, 전, 삼겹살 곁들이는 채소로 익숙하지만, 이젠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 7일 방송된 일본 TBS ‘히루오비’는 미나리의 소비가 급증했다고 소개했다. 한류 음식의 영향으로 미나리 출하액이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 이후 도쿄 신오쿠보를 비롯한 한인타운에는 미나리를 찾는 손님들이 몰렸다. 그중에서도 ‘미나리 삼겹살’이 주목을 받았다. 구운 고기에 미나리를 곁들여 먹는 한국식 조합에 일본인들이 반응한 것이다. 방송 이후 SNS에도 “이 조합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도쿄 주점에서 시작된 미나리 열풍
도쿄 시내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손님의 90%가 미나리 찌개를 주문하고 대부분이 재방문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현지 식당 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도쿄 내 미나리 찌개 판매 식당 수는 최근 10년 사이 약 4.2배 늘었다.
예전에는 간장이나 된장국 중심이었던 일본식 국물 요리에 한국의 얼큰한 찌개가 섞이면서, 이질적이라는 평가가 줄어들었다. 그 안에서 향이 강하지 않고 개운한 채소로 미나리가 각광받았다. 국물 요리뿐 아니라 미나리를 활용한 파스타, 라면 등 퓨전 메뉴도 등장했다.
실제로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미나리를 넣은 오일 파스타나 간장 베이스 라면 레시피가 공유되고 있다. 데쳐서 무쳐먹는 한국식보다 응용 요리에 강한 일본식 활용이 돋보인다. 이처럼 요리에 대한 수용 폭이 넓어지며 미나리 소비도 따라 증가했다.
이 수요는 가격에도 반영됐다. 미나리 도매가격은 5년 평균치를 넘어섰다. 2023년 출하액은 약 4억8000만엔, 한화로 약 46억2000만원에 이르렀다. 기존 채소 대비 출하액이 월등히 높다.
단순 유행 넘어선 한국 식재료
미나리 인기가 단순한 한류 열풍만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채소 자체가 가진 특성도 한몫했다. 미나리는 비타민 A, C, 식이섬유, 칼륨이 풍부하다. 물속에서 자라 특유의 향이 있으며, 입맛을 돋우는 데 좋다.
이 향을 만들어내는 성분은 정유 성분이다. 음식 냄새를 눌러주고, 고기와 함께 먹으면 느끼함도 줄여준다. 미나리 삼겹살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 많은 고기 사이에서 미나리가 전체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일본에서도 이런 점이 강조됐다. 일본 SNS에는 “지금까지 먹은 삼겹살 중 최고였다”, “미나리 덕분에 고기가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입안에 남는 뒷맛이 깔끔하다는 점이 일본인의 취향과 잘 맞았다.
단, 생으로 먹을 땐 주의가 필요하다. 미나리는 잎과 줄기 사이에 미세한 이물질이 끼기 쉽다. 반드시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궈야 한다. 혹은 살짝 데쳐 먹는 게 좋다. 생식 시 체질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또한 칼륨 함량이 높은 편이라 신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섭취를 조절해야 한다. 칼륨이 과도하게 쌓이면 고칼륨혈증이 생길 수 있다. 이 상태가 되면 근육이 약해지거나 심장 리듬이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자연스럽게 퍼지는 미나리 소비
특정 유행에 따른 일시적인 관심을 넘어서, 미나리는 일본 식문화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단독 반찬보다 함께 곁들이는 음식에 잘 어울려, 현지 식당 메뉴에도 부담 없이 추가됐다.
미나리 김치, 미나리 전, 미나리 튀김까지도 도쿄 일대에서 판매되고 있다. 일본 소비자 입맛에 맞게 간을 줄이거나 튀김가루를 섞는 방식으로 변화한 모습도 보인다.
시장에서는 생 미나리뿐 아니라 손질된 미나리 팩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조리 시간을 줄이면서도 향을 그대로 살릴 수 있어 반응이 좋다. 슈퍼마켓 한쪽엔 한글 포장지에 ‘미나리’라고 적힌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나리는 한류 음식의 확장판이 아닌, 독립된 식재료로 자리잡는 중이다. 한국식 조리법 외에도 일본 내에서 변형된 방식이 등장하면서 활용도가 더 넓어지고 있다.
한 방송 프로그램이 미나리를 다뤘다는 이유로 일시적 유행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출하량 증가와 식당 수 증가는 단기간 결과로 보기 어렵다.
일본 내 식재료 중 외국 채소가 이렇게 빠르게 스며드는 경우는 드물다. 향이 강하거나 식감이 낯설면 외면받기 마련이지만, 미나리는 그 경계를 넘었다.
한국의 봄 식재료였던 미나리가 일본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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