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보험개혁회의’가 도입 1년을 맞았지만 시장과 현장에서의 개선 효과는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보험사의 근본적 구조와 소비자 신뢰라는 본질은 손대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개혁회의에서 제시된 74개 과제 중 23개만이 실제 제도화됐고, 나머지는 법령 개정이나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고 있다.
제도적 변화는 분명 있었지만, 보험사의 영업 구조와 회계 투명성, 소비자 보호 등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오히려 지급여력 비율 하락, 회계 불신 등으로 보험사의 건전성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도’ 바뀐 점은 긍정적이지만… “본질적 구조는 그대로”
지난해 5월, 금융당국은 ‘보험개혁회의’를 출범시키며 보험산업의 근본적 체질 개선과 소비자 신뢰 회복을 선언했다. 정부와 보험업계, 학계,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해 제도 혁신을 추진해왔다.
보험개혁회의가 내놓은 74개 과제 중 23개는 1년 만에 제도화되며 성과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무사고 환급형 자동차보험, 태아보험 상품 다양화, 임신·출산 보장 확대 등이 있다.
성과가 있었던 대표적 과제로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무사고 환급형 자동차보험, 태아보험 상품 다양화, 임신·출산 보장 확대 등이 있다. 특히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조치로 기대를 모았으며, 금융위는 이를 보험업권의 ‘디지털 전환’의 상징적 과제로 강조해왔다.
GA(법인보험대리점) 구조 개편도 주목할 만한 진전이었다. 수수료 규제 체계가 강화됐고, 설계사 이직에 따른 민원 대응 강화, 모집 책임 명확화 등의 기준이 신설됐다. 방카슈랑스 관련 규제 완화도 단행돼, 20년 만에 은행 창구에서의 보험상품 판매 규제가 일부 완화됐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소비자에게 체감되는 수준으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의 경우, 의료기관의 참여가 ‘의무’가 아닌 ‘자율’에 그쳐 2025년 5월 기준 전국 의료기관의 참여율은 20% 초반에 머물고 있다. 또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종이서류를 직접 제출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GA 구조 개편 역시 수수료 규제 강화, 설계사 이직에 따른 민원 대응, 모집 책임 명확화 등 일부 개선이 있었으나, 설계사 불완전판매, 고령층 대상 불투명 상품 설계, 고지의무 완화 상품의 오남용 등은 현장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방카슈랑스 규제 완화도 20년 만에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다.
보험업계 내부에서도 “제도적 변화는 있었으나, 영업 현장이나 소비자 체감 변화는 미미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개혁회의가 업계의 운영 효율성이나 제도 정비에만 초점을 맞춰졌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소비자 민원 감소나 보험설계사 책임 강화 등 실질적 소비자 보호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K-ICS 기준 완화 필요”… 회계 불신도 여전
소비자 신뢰 회복과 함께 보험개혁회의의 또 다른 핵심 목표였던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강화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보험업권 전체의 K-ICS(신지급여력제도) 비율은 206.7%로 전분기보다 11.6%p 하락했다. 전년 말 대비로는 무려 25.5%p 하락이다. 생명보험사 평균은 203.4%, 손해보험사는 211.0%로 모두 낮아졌다.
K-ICS는 IFRS17(새 국제회계기준)과 함께 도입된 제도로, 보험사의 지급여력을 시장가치 기준으로 측정해 자본 적정성을 평가한다. 그러나 기준이 엄격해지자, 오히려 보험사들이 자본 확충 부담에 직면하거나 급격한 비율 하락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리 하락, 환율 변동, 주가 하락 등의 외부 변수까지 겹치며 일부 중소 보험사는 150% 기준선에 근접하거나 미달하는 상황도 나타났다.
최근 보험연구원은 “현행 K-ICS 150% 기준이 금리 변동성과 자산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감독 기준선을 130%까지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기준자본의 구성을 보다 명확히 하고, 과도한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감독 유연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런 기준 완화 제안이 자칫 ‘보험사 봐주기’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회계처리와 관련해선 보험사들이 IFRS17 하에서 부채이익을 조기에 계상하거나, 장기 계약의 이익을 당기 손익으로 반영하는 식의 ‘수익 부풀리기’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보험업계 전문가는 “보험개혁회의가 실질적인 구조 개혁에 접근하지 못한 채 성과 위주에 치중하면, 제도 개선은 공허한 껍데기가 될 수 있다”며 “당국이 감독기준을 완화하기에 앞서, 보험사의 회계처리 및 재무정보의 신뢰성을 먼저 확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보험개혁을 위해서는 업계가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구조를 바꾸는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 보험회사에 대한 영업 구조 개선, 판매전문회사 도입 등 핵심 과제는 ‘검토’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본질적인 구조 개선에 방점이 찍혀야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보험개혁이 유효하려면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