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도표처럼 중세(전근대 국가)와 근대 국가는 인식의 방향이 정반대다.
오래된 전통(과거)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고대인의 이야기’를 신성시하는 과거지향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장래에 있을 지知의 확
대를 믿는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가 될 것인가가 중세와 근대의 운명을 갈랐다. 어느 순간 창조적 소수자들이 일으킨 인식혁명이 엘리트 집단의 마음과 신념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서 혁신과 기술 발전에 우호적인 사회와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서구의 인식혁명이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면서 대분기가 시작됐다. 그 이면에는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조엘 모키르는 『성장의 문화』에서 동서양의 인식 차이를 간결하게 요약했다.
“유럽의 계몽주의는 근대인과 고대인의 싸움에서 그들 세대가 과거 세대보다 우월한 문화와 지식의 총체를 창출했다. 이것이 더 나은 세계로 이끄는 관문이라고 굳게 믿은 근대인이 거둔 승리의 결과”였다.
“산업계몽주의라는 지식혁명과 이어서 나타난 서양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전의 기저에는 편지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며 ‘고대인과의 투쟁’을 이어간 편지공화국이라는 지식공동체”가 있었다.
이처럼 “고대인에 대한 비판이 가능해지면서 관찰과 실험으로 무장한 지식혁명으로 인해 서양이 동양을 앞서게” 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는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유럽은 시선의 초점을 과거에서 방향을 돌려 미래로 향했다.
반면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같은 고대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으로 ‘고대인과의 투쟁’은 일어날 수 없었다. 과거의 경전을 끊임없이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교육과 과거제도는 사대부들의 생각을 과거지향에 묶어버렸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공들여 쌓은 ‘사상의 구축물’에 스스로 갇힌 것이다. 동양은 ‘고대인의 지식의 모방과 반복에 그친’ 결과 ‘실용적 지식을 천시하면서 고대인의 지식에 근거한 형식적 지식만을 유일한 지식’으로 인정했다.
조선 사대부들의 머리를 옭아맨 것은 ‘허구의 질서’였다. 조선의 이상적인 모델은 중국 고대 선왕들의 정치(요순시대)
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경제는 고대 중국의 농업경제였다. 공자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옳다며 도덕규범의 근간으로 ‘삼강오륜’을 강조했다. 이런 시대에 사대부들 중 누가 감히 공자를 부정할 수 있었겠는가. 공자의 문제는 단순히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사대부들의 세계관과 정치체제와 단단히 얽혀 있었다. 공자와 맹자 같은 과거의 현자들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를 추종하며 그것을 수많은 가르침과 책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대부들은 그들이 남긴 위대한 문헌들을 깊이 연구하고 이해함으로써 지식을 얻었다. 그러나 사대부들의 공부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범죄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 또한 위험한 사회였다. 그에 반해 서유럽은 새로운 발견과 지식을 늘리는 일에 집중했다.
[대전환기16]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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