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폴리뉴스는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 아젠다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특집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번 시리즈는 정치 구조 개편과 권력 분산, 국민 통합 등 정치적 쟁점은 물론, 경제 성장 전략과 민생 현안, 산업·노동·복지 등 경제 분야까지 폭넓게 조명한다. 격변의 정국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을 맞아 각 후보와 정당의 정책·공약, 핵심 쟁점, 유권자 선택의 기준을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분석해 독자 여러분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편집자 주]
21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은 국가 소멸 위기까지 거론될 만큼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해결에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유력 후보들 모두 저출산, 초고령화 인구대책의 컨트롤타워인 '인구부' 설립 등 큰 그림을 제시하기보다는 구체적 수준의 과제들을 나열하는 데 그쳐 기존의 정책과는 차별성이 없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위기·지방 소멸 심각
해외도 저출산 겪었지만 모든 혼인 인정하며 출산율 상승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전년 0.72명보다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저출산 현상은 서구 국가에서도 현재 진행 중으로 출산율 회복에 성공한 국가인 프랑스도 2010년 2.029명에서 2023년 1.659명으로 다시 낮아졌다. 스웨덴 역시 2010년 1.98명까지 회복했으나 2023년 1.45명으로 낮아졌다.
전 세계적으로 고용, 주거 등 경제적 불안정과 더불어 전염병, 기후 변화, 전쟁 등 비경제적 요인들의 영향이 추가되면서 자녀관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1970년대 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 이하로 급격하게 낮아지는 경험을 했다. 이후 가족과 결혼제도에 대한 인식이 비판적으로 변화하고 만혼과 비혼, 동거 등 새로운 생활양식이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은 문화적인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했다. 프랑스는 1972년 민법 개정을 통해 '법률혼'인 결혼 외에 모든 혼인 관계 또는 비혼 관계로 태어난 모든 자녀가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며 출산율을 높였다.
유교적 성향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법률 제도 아래의 결혼만 인정하다 보니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이를 사회가 받아들이기엔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2024년 0.75명이다. 여성 1명이 자녀를 1명도 낳지 않는 초저출산이 계속되면 15~64세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 15년 뒤인 2040년에 들어서면 역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닌 산업 생산력 저하, 노동력 부족과 잠재성장률 하락 등 경제 전반에 구조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대선에 나온 후보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인구 정책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자녀 양육 지원을 위한 세액·소득공제 확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결혼과 출산 시 청년 주택 주거비 지원과 신혼부부 주거 대출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주거 지원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다.
세금과 주거비 지원 혜택을 제시했지만 과거의 정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책 나열의 형태일 뿐 출산율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적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후보들 모두 저출산이 국가 소멸 위기로 이어지는 만큼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이재명, 자녀양육 세제혜택 강화…후보 직속 인구미래위 출범
이재명 후보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세제 혜택 등 자녀 양육 지원을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10대 공약 중 아홉 번째 공약으로 저출산과 고령화를 해결을 위한 인구 정책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한국 경제 침체의 원인이 저출산에 있다고 보고 단기 지원금을 나눠주기 보다는 구조적 해법에 맞춰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18세까지 아동 수당을 확대하고 돌봄과 양육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한편 고령자의 복지주택 확대와 노인 일자리 연계 사업을 제시했다.
이어 자녀 수에 비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공제 한도 상향을 추진하는 한편, 초등학생의 예체능학원·체육시설 이용료를 교육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신혼부부를 위한 공약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난임부부 치료 지원 강화를 내세웠다. 아울러 돌봄과 일·가정 양립 방안으로는 △공공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 강화 △지자체 협력형 초등돌봄 추진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수업료 지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이러한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 지난 15일 후보 직속으로 인구미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서영교 의원을 위원장으로 위촉해 이제 막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저출산 문제는 존속의 문제"라며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서 결혼, 출산, 양육, 취업 등 포괄적인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힘을 모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방 소멸 위기의 대안 중 하나로 '5극 3특 균형 발전 공약'도 제시했다. 충청권과 수도권, 동남권, 대구경북권, 호남권 등 5대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을 특별자치도로 국토발전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며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도 지방 살리기의 한 축으로 보인다.
김문수, 결혼·출산하면 주거 지원 확대…9년간 주거비 지원
김 후보는 청년과 신혼부부에 대한 주거 지원을 저출산 공약으로 내놓았다. 10대 공약 중 여섯 번째로 제시하며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나라, 안심되는 평생 복지'를 가치로 정책을 제안했다.
임신·출산 지원을 위한 공약으로 △난임생식세포 동결·보존 건강보험 급여 항목 포함 △가임력 검사 및 난임 시술비 지원 △임산부 검진 및 분만비 지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어 주택 공약의 세부 내용에서 결혼 시 3년, 첫째 아이 출산 시 3년, 둘째 출산 시 3년으로 총 9년간 청년주택 주거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주택 구입을 위한 신생아 특례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전세 대출 기간을 연장하고 신혼부부 디딤돌·버팀목 대출의 소득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분리된 공간에서 함께 거주하며 양육과 생활을 나누는 '생활분리형 아파트'를 도입하는 등 출산 장려를 위한 주거 지원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인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수도권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권을 지방정부에 완전히 이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 후보는 지난 12일 대전 지역 유세에서 "비수도권의 인구 유입, 지역 산업 재생, 기업 유치를 통한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며 "그린벨트 해제권의 지방 이양은 지역경제 활력을 높이고 국토이용을 효율화하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석, 다자녀 차량에 핑크 번호판·고속도로 전용차선
이 후보는 10대 공약 안에 저출산이나 다자녀를 위한 공약은 없었지만 지난 9일 추가로 공약을 발표하며 당대표 시절 법인차량 연두 번호판을 도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자녀 핑크 번호판'을 정책으로 제시했다.
아이 셋 이상 다자녀 가구가 소유한 차량에는 핑크색 번호판을 부착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세 자녀 이상의 가구가 소유한 차량 1대에 한해 핑크색 번호판을 부착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해당 차량에 대해서는 고속도로 전용차선 통행, 다자녀 전용 주차장 이용, 공영 및 민자도로의 통행료 50% 할인, 발렛파킹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공공기관과 대형 건물에 다자녀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하며 다자녀 차량에는 70% 이상의 주차요금 감면 혜택도 줄 계획이다.
이 후보는 "다자녀 가족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것보다 생활 속에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핑크 번호판을 부착한 차주가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사회적 존경을 받는 풍토를 만들면 저출산 해결에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책과의 차별성은 '물음표'…"새로운 게 없다"는 비판도
다만 대선 주자들의 이러한 정책은 출산율 제고에 필수적인 일과 가정의 양립을 뒷받침하기 위한 대책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인구연구센터장은 "육아휴직 자동화, 유연근무제 전면 확산 등 근본적인 근로문화 개선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부족하다"며 "남성 육아휴직률이 여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을 고려하면 육아휴직을 '신청'이 아닌 '자동 부여 후 선택적 취소'방식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아동수당 지급도 만 18세, 월 20만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늘어나는 재정 부담에 반해 출산율 반등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등장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아동수당 지급을 확대하려면 막대한 재정 부담이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가 파격적인 현금성 지원을 준다고 사람들이 아이를 더 낳는 것도 아니다, 후보들 모두 인구 정책으로 내놓은 것들이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후보들의 공약이 모두 일반적인 사업 나열에 그쳤을 뿐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거시적인 계획, 예를 들어 인구부 설립이나 구체적인 제도 확립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위한 합의체 구성 등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인구부' 신설, 대선 주자들 공약에 없어...비영리단체, '인구부' 설치 등 대선공약 제안
현재는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해당 역할을 맡고 있지만 각 부처에서 1~2년 파견직 공무원으로 이뤄져 정책 연속성을 갖기 힘든 실정이다.
무엇보다 저출산, 초고령 사회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위원회'구조로는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총체적이고 체계적, 근본적인 인구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컨트롤타워인 '인구부' 설립이 절박함에도 대선주자들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있다.
'인구부 신설'은 윤석열 정부에서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구전략기획부'를 설립하고 향후 5년을 골든타임으로 정해 정책 방안을 논의하자는 여야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지만 尹탄핵 정국 이후 논의가 멈춘 상태다.
비영리 민간 인구정책 전문기관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21대대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5월12일 최우선 국가과제를 '국가생존을 위한 인구 전략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인구 위기 반전을 위한 10대 정책'을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제안했다.
연구원은 최우선 과제로 '인구부' 설치를 제안했다. 또한 연구원은 인구정책 추진 재원을 독립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인구위기 대응 특별회계'와 '인구목적세'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이인실 미래인구연구원장은 "향후 5년, 2030년까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인 만큼 새 정부가 인구 정책을 모든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고위 민간위원인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 세대인 에코붐 세대가 결혼·출산기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인구 고령화 문제도 심각해지는 시기가 2030년과 맞물린다"며 "인구문제에 대응하는 부처 개별 사업은 각 부처 나름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는 꼭 필요하며 현재의 느슨한 위원회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인구부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부처 신설을 위해서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함에도 현재까지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지 않은 상태여서 부처 설립에 속도를 내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선 주자들의 주요 공약에도 인구부 설립 관련 내용은 담기지 않아 다음 정권에서 이를 제도화 할 가능성이 있을 지도 미지수로 남게 됐다. 대한민국 국민들과 대선 주자들 모두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위기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정책 마련을 위한 논의에 힘을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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