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종효 기자] 국내 벤처 생태계가 곳곳에서 총체적 난관에 직면했다. 혁신성장을 이끌어온 R&D 중심 기업들이 줄어드는 반면 단기 수익 위주의 투자 유형 기업이 증가하는 등 산업 구조 변화도 두드러진다.
19일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확인종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 수는 2023년 말 4만81개로 사상 처음 4만개를 돌파했다가 2024년 3만8216개로 1865개(4.7%) 감소했다. 이는 2015년 3만개를 넘긴 이후 2020년 3만9511개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추세가 2021년과 2022년 2년 연속 감소한 데 이어 다시 반전된 수치다.
지난해 고금리·고물가 장기화로 인해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하고 내수 수요 위축이 맞물리며 벤처기업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업종별로는 혁신성장 유형 벤처기업이 2023년 2만5953개에서 2024년 2만4358개로 1595개 줄었고 연구개발 유형도 6931개에서 5939개로 14.3% 감소했다. 반면 벤처투자 유형은 6930개에서 7670개로 10.7% 증가하며 단기 수익 중심 기업이 늘어나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났다.
벤처기업 수가 줄어든 것은 지속적인 수익구조 악화와 경기 침체 및 운영 자금 부족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2023년 기준 벤처기업 평균 매출액은 65억4200만원으로 전년과 유사했으나 평균 영업손실은 1100만원을 기록했다. 부채 규모는 기업당 44억8300만원으로 전년 대비 6.2% 증가하며 자금 사정 악화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응답 기업 47.7%가 "2025년 자금사정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29.6%는 운영 자금 부족을 최대 현안으로 꼽았다.
벤처기업협회의 '2024년 4분기 경기실사지수(BSI)'에서도 2025년 1분기 전망지수는 88.9로 2009년 조사 시작 이후 처음으로 기준치(100)를 하회했다. 이는 제조업 BSI가 80.0까지 떨어진 데 기인하며 주요 악화 요인으로 내수판매 부진(85.2%), 자금사정 어려움(43.4%)이 지목됐다.
벤처투자 부문에 있어서도 양적 팽창과 질적 후퇴 사이 딜레마가 존재한다.
지난해 상반기 벤처투자 규모는 5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하며 호조를 보였으나 투자 편중 현상이 두드러졌다. 1조2966억원으로 43.7% 증가한 ICT서비스, 9457억원으로 40.9% 증가한 전기·기계·장비, 8348억원으로 39.2% 증가한 바이오·의료 등 3개 분야가 전체 투자 57%를 차지한 반면 2023년까지 성장세를 보이던 신기술 분야 투자는 정체됐다.
신규 펀드결성액은 5조1000억원으로 공개됐지만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24년 누적 기준 신규 결성액은 5조7571억원으로 전년 대비 15.6% 감소했다. 지난해 말 발표된 '벤처기업 투·융자 현황 조사'에서 응답 기업 71.9%는 "벤처투자 유치 경험이 없다"고 답변해 자금 조달의 구조적 문제가 확인됐다.
업계는 불확실성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조사에서 응답 기업 52.3%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정책 변화가 경영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와 관련, 성상엽 회장은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라며 "규제 완화와 자금 조달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11.9조원 규모의 벤처투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책 자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해 설립 3년 이하 초기기업 투자액이 2조2243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감소한 점이 이를 반영한다.
벤처업계는 R&D 투자를 줄이고 실적 개선에 집중하는 등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지난해 벤처기업 연구개발 비율은 5.8%로 일반 중소기업(1.0%) 대비 높은 편이지만 2023년 대비 0.7%p 감소했다. 이는 자금 여력이 약한 중소벤처기업들이 R&D 투자를 줄이며 단기 실적 개선에 집중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실제 지난해 기술기반 창업기업 수는 21만4917개로 전년 대비 2.9% 감소하며 3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업계 전문가는 "고금리 환경에서 벤처캐피탈 투자 심리가 위험 회피형으로 바뀌면서 초기 단계 기업보다 성장주기 후반부 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했다"며 "정부 지원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자금 투입을 넘어 생태계 전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벤처 혹한기가 길어지면서 올해도 업계 어려움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창업 생태계 근간인 기술혁신형 기업들이 줄어드는 만큼 정책당국과 업계 협업을 통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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