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고기는 진리’라고 할 정도로 우리 식생활에서 축산물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삼겹살과 치킨은 대중적인 외식 메뉴로 굳건한 자리를 점하고 있으며 치즈, 요구르트 등은 MZ세대에게도 인기가 높다.
으레 소비가 늘어나면 해당 분야의 산업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축산물 소비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국내 축산업의 생산기반은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늘어난 소비의 상당 부분을 수입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 체결 이후 20년이 흘렀다.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축산업은 축종을 불문하고 본격적인 무관세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이전까지도 파괴적이었던 FTA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욱 거세질 것이란 의미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과거 시대를 주름잡던 유행어 중 하나다. 하지만 축산관계자 중 누구도 이 유행어에 시원하게 웃지 못했다. 축산업에서는 실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웃을 수 없는 질문 앞에 이제는 정부,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응답이 절실하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다음 달로 다가온 6.3 대선을 앞두고 분야별로 대통령 후보에게 공약으로 채택해 달라는 요구사항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 축산업으로 분야를 좁혀서 보면 축종별 육성법 제정에 요구사항이 크게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은 요구는 그동안 땜질 처방에 의존해온 주먹구구식 축산정책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전국한우협회는 지난달 17일 ▲한우법 제정 ▲주요 가축전염병의 국가책임 방역 강화 ▲농사용 전기세 (甲) 통폐합 지원 ▲사료안정기금제도 도입 등 4대 과제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해달라고 밝혔다. 한우법(지속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 제정안은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바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난달 29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위원회를 통과한 상황이다.
한우법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5년마다 한우산업 육성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한우에 대한 수급조절, 자급률 확보, 유전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기업의 한우 생산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도 논의되고 있다.
최근 한우농가들은 미국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제한 조치를 지적하고 나서면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한우협회 민경천 회장은 “지난 2년여 동안 전국 한우농가의 12%에 해당하는 1만여 농가가 폐업했다. 한우 1마리 출하할 때마다 170만원의 손실을 보는 구조가 4년째 이어지고 있다”라며 한우법 제정을 촉구했다.
대한한돈협회는 지난달 17일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돈산업육성법(한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앞서 한돈법 역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바 있다.
어 의원이 발의한 한돈산업육성법은 ▲5년 단위의 한돈산업 종합계획 수립 ▲수급조절협의회와 수입안정보험 등 마련 ▲ICT 기반 스마트사육 보급 ▲한돈고급화 및 유통혁신 ▲ESG 경영과 탄소중립 대응 ▲공공급식 확대 및 소비촉진 ▲국제협력과 수출지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돈협회는 “그동안 한돈산업은 가격 하락과 생산비 급등 등 구조적 위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왔다”라며 “이를 뒷받침한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법적 보호 장치는 부재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본 법안이 단순한 지원법을 넘어 산업의 구조적 재편과 공익적 기능 강화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으로서 기능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한국육계협회 역시 지난달 21대 대통령 선거 공약 요구사항을 공개했다. 육계협회는 축산법에 근거한 축산물수급조절협의회가 농식품부 자문에 불과하고 축산계열화사업법의 생산조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축산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외에 육계협회는 가축재해보험 보상기준 현실화, 품질보증마크 증명표장제 도입 등을 건의했다. 육계협회는 “권고사항인 닭고기 등급판정을 배제하고 국내산 닭고기에 대한 품질보증마크 증명표장제를 통한 차별화로 국내산 닭고기 자급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토종닭협회는 앞서 2019년부터 토종닭산업진흥법(토종닭산업 진흥에 대한 법률) 제정을 모색해 왔다. 이들은 토종닭 종자를 지켜 장차 심화될 종자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25개 축산관련단체가 모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이하 축단협)는 범축산업계의 대선 공약 요구사항으로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한 축종별 육성 및 발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축단협 손세희 회장(한돈협회 회장)은 “국내 축산업은 FTA 확대, 생산비 폭등, 전기료 급등, 환경규제 등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면서 “한우, 한돈, 토종닭 등 각 축종별 특성을 반영한 별도 법안을 통해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산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축산업 진흥에 관한 주된 법적 근거는 축산법에서 비롯하고 있다. 그러나 축종별 고유한 특성이 있는데 축산법에만 국한해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한국생명환경자원연구원 정승헌 원장은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각 축종별로 생산자부터 스스로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의 방향성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새로운 축산업 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라며 “정부가 어떤 부분에서 생산자들을 도울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현재 농식품부는 축산업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주요 축종들은 각 축종에 맞는 법령에 따라 해당 산업이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축산법으로 다 해결하려는 생각은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사고”라며 “축산법에 모든 축종을 포함해 뒤죽박죽 정책을 만들어서는 생존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정부도 과도하게 개입하기보다 현장 중심으로 정책을 입안해 생산자들의 선택지를 넓혀 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축산업계에서는 축산의 가치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기여를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정 원장은 “축산업을 마치 공산품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부족하면 외국에서 수입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는데 단순하게 볼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축산업은 식량산업으로 식량주권적 관점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산업”이라고 말했다. 또, “전체 농업 경제의 약 40%를 축산업에서 기여하고 있기에 축산업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면 농촌의 경제 및 사회분야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농촌소멸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낙농과 양봉은 축종의 특성에 맞춘 개별법이 존재한다. 낙농진흥법은 낙농산업의 구조 개선, 원유와 유제품의 수급 조절, 가격 안정과 유통 구조의 개선을 통해 낙농 관련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양봉산업법(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공익적 가치를 지닌 꿀벌을 보호 관리하고 양봉산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양봉농가의 소득증대, 국민건강 증진,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축산물 소비는 늘었는데 국내 농가수·자급률은 ‘흔들흔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1월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농업전망 2025’에서 올해 농업생산액이 60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축산업 생산액은 24조원으로 지난해 대비 0.7% 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자료에 의하면 국내 농식품 소비에서 1인당 육류 및 유제품 소비량은 2014년 육류 45.4kg, 유제품 72.4kg에서 2023년 육류 60.0kg, 유제품 83.9kg으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주식인 쌀은 1인당 소비량이 2015년 62.9kg에서 2024년 55.8kg로 완만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축산업에서 단일품목으로 가장 생산액이 높은 품목은 한돈이다. 농식품부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한돈의 생산액은 9조1127억원에 달한다. 이는 8조원 내외를 기록하는 쌀 시장보다 큰 규모다. 가격변동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축산이 농업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축산농가 수와 축산물 자급률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축산물품질평가원 가축동향조사를 보면 한우농가수는 2015년 4분기 10만1670호에서 2016년 4분기에는 9만7498호로 10만호 아래로 줄어들었다. 이어 2020년 4분기에는 8만8994호를 기록하며 9만호 이하로 하락했고 급기야 지난해 4분기에는 7만8499호로 8만호 이하까지 감소했다. 반면, 한우 사육마리수는 급증했다. 2017년 4분기 한우 사육규모는 287만1400마리였으나 지난해 4분기에는 337만77마리까지 늘어났다.
한돈농가수는 2017년 4분기 6313호(사육마릿수 약 1127만마리)에서 2024년 4분기 5513호(사육마릿수 약 1085만마리)로 줄었다. 동 조사에서 낙농가수는 5392호(사육마릿수 38만2039마리), 육용계농가수는 1431호(사육마릿수 약 8897만마리)로 나타났다.
순천대학교 동물자원과학과 양철주 교수는 “단백질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필수 영양소로 축산물은 이 단백질을 공급하는 중요한 자원”이라며 “현재 우리는 1인당 쌀은 연간 60㎏ 이하로 먹고 있는데 축산물은 육류와 유제품을 더해 연간 140㎏ 내외를 먹고 있다. 축산물을 많이 섭취하면서 체격도 커지고 평균수명도 늘어났다”라고 축산물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세계 인구가 현재 80억명인데 장차 100억명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식량 생산이 점차 어려워지는데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라며 “국내 농축산물 생산 기반을 지킬 대책이 필요하다. 수입에 의존하면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힘들다”라고 강조했다.
주요 축종별 자급률을 보면 국내산 쇠고기 자급률은 2021년 36.8%(한우 자급률 31.8%)에서 지난해 41.1%(한우 자급률 38.5%)로 점차 회복하고 있다. 이는 한우가 수입 쇠고기와 차별화에 성공하며 별도의 시장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점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돼지고기 자급률은 2020년 78.1%에서 2024년 72.0%로 소폭 낮아졌다. 또, 닭고기 자급률은 2023년 역대 최고치인 23만1000톤의 닭고기가 수입되며 77.0%까지 떨어진 바 있다. 이는 전년도인 2022년 자급률과 비교해 5.8%p 감소한 수치다.
우유 자급률은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하락했다.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01년 63.9㎏에서 2021년 86.1㎏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기간 우유 자급률은 77.3%에서 45.7%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우유 자급률은 46.7%를 기록했다.
우유 자급률이 저조한 이유는 치즈, 버터, 연유 등 유제품 수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유제품 수입량은 2001년 65만2584톤에서 2021년 251만1938톤으로 4배 가량 늘어났다. 동 기간 국내 우유 생산량은 233만8875톤에서 203만4384톤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우유 소비량이 늘어나는 동안 국내 우유 생산량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FTA 인한 무관세 수입 공세, 앞으로 더 거세진다
축산업계에서는 농가수 감소와 자급률 하락의 가장 큰 이유로 각국과 체결한 FTA를 원인으로 꼽는다. 우리나라는 2004년 4월 발효한 한-칠레FTA를 시작으로 59개국과 22건의 FTA를 체결했다. 이미 체결된 축산강국과의 FTA 내용을 보면 축종을 불문하고 수입의 공세는 앞으로 더 거세질 전망이다.
소고기는 2026년 미국산, 2028년 호주산 무관세 수입이 예정돼 있다. 단계적으로 인하되던 관세가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또, 현재 협상이 중단된 상황이지만 한-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FTA가 체결되면 소고기 수입물량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미국 축산업계는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제한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우협회는 지난 3월 성명에서 “광우병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30개월령 이상의 소고기 수입이 허용되면 소비자의 불신이 소고기 자체로 이어져 소비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미국산 소고기 관세철폐에 이어 비관세장벽마저 없어지면 한우농가가 설 자리가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돼지고기는 이미 미국산, EU산 냉동 및 냉장삼겹살, 호주산 냉장삼겹살이 무관세로 수입되고 있다. 캐나다산 냉동삼겹살(관세 5.7%)과 냉장삼겹살(관세 5.1%)은 2027년부터 무관세로 수입된다.
국내산 돼지고기인 한돈은 냉장육에서의 차별성으로 시장에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냉장육마저 가격 우위를 내세운 수입산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갈림길에 선 모습이다.
닭고기는 단계적으로 관세율 인하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부터 EU산 냉동닭다리, 냉동닭날개, 냉동닭가슴은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우유는 내년부터 미국산(2026년 1월)과 EU산(2026년 6월) 우유가 무관세로 수입된다.
농식품부가 2023년 실시한 식품산업원료소비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식품제조업에서 수입 축산물을 사용하는 이유로 ‘국내산은 원가가 높아 가격경쟁이 안 된다’가 가장 많이 꼽혔다. 소고기는 78.2%, 돼지고기는 70.2%, 닭고기는 62.1%가 가격경쟁력을 원인으로 꼽았다. 관세장벽을 허문 축산선진국과의 FTA가 얼마나 국내 축산업에 위협적인지 보여주는 결과다.
이 조사에서 ‘국내산은 맛·품질·규격이 일정하지 않아서’를 꼽은 응답은 소고기 1.8%, 돼지고기 2.7%, 닭고기 2.8%에 불과했다. ‘국내산보다 더 안전하게 생각돼서’를 꼽은 응답은 소고기 3.3%, 돼지고기 3.4%, 닭고기 5.3%에 그쳤다. 수입과의 비교에서 국내산 축산물의 품질과 안전성은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상지대학교 동물자원학과 성하균 교수는 “농축산물 수출국을 보면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호주 등 대부분 선진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농축산업은 근간산업으로서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향후 축산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일터이고 삶터일 뿐 아니라 가족의 쉼터가 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 교수는 국내에서는 축산업이 마치 환경보호와 거리가 멀다고 인식하는 선입견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라는 지적도 했다. 기후위기가 대두되면서 탄소중립이 세계적 과제로 부상하는데 정작 선진국들은 축산강국이란 점을 떠올려 봐야할 대목이다.
성 교수는 “농산물 생산부터 식품 가공까지 모든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대부분 동물사료로 재활용하고 있다. 만약 축산업이 없었다면 이 부산물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라며 “축산이 없었다면 지구의 환경은 더 흔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축산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꾸려면 일터이자 삶터인 축산 현장이 소비자들이 찾아오는 쉼터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지역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6차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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