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한국 정부가 구글이 신청한 고정밀 국가기본도의 국외반출 결정을 유보하고 처리기간을 연장했다. 미국 정부는 이를 디지털 장벽으로 규정하며 압박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기술적 종속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 14일 구글이 신청한 1/5000 축척 고정밀 국가기본도의 국외 반출 요청에 대해 유보 결정을 내렸다. 동시에 해당 안건의 처리 기간을 오는 8월 11일까지 60일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구글은 지난 2월 한국 정부에 해당 데이터를 자사의 데이터센터로 반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1/5000 축척 지도는 지상 50m의 거리를 지도상 1cm 수준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고정밀 데이터로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시티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국내 법령에 따르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포함한 기본측량성과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허가 없이는 국외 반출이 금지돼 있다. 다만 안보 등의 국가적 이익이 우선될 경우, 한미 협의체의 논의를 거쳐 제한적 허용이 가능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한국 정부의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제한을 디지털 장벽으로 지목한 바 있다. USTR은 해당 규제로 구글 등 해외 기업이 교통 업데이트, 내비게이션 서비스 제공 등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첨단 디지털 서비스 분야의 해외 사업자가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했다며 압박하고 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시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거론되는 것은 국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논쟁이다. 국방부는 데이터 국외 반출 건은 국가 안보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한미 협의체를 통해 논의 중인 사안이라고 설명한다.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는 “안보적으로 문제가 되는 요소가 없어야만 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라며 “관련 안보 이슈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참조와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상배 교수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은 단순히 지도 데이터를 제공하는 문제를 넘어서 국가 안보 전반에 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구글은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분산 저장 체계를 사용하고 있어 지도 데이터가 해외 어느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는지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특히 구글이 보유한 위성 영상과 결합될 경우, 적의 타격 정밀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IT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카카오, 티맵 같은 국내 지도 서비스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구글에 핵심 데이터를 제공하면 결국 국내 관련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이슈를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여대 이정현 교수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국방, 과학기술, 산업 등 국민 생활 전반에 걸친 핵심 기반 인프라인 만큼 이 자산을 오픈소스처럼 제공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 직결된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구글의 고정밀 데이터 요구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협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라며 “새 정부에서는 더욱 단호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며, AI 시대에 사이버 안보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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