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자리 남은 멸종위기 식물… 백록담 절벽에서 만난 ‘조선의 에델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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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자리 남은 멸종위기 식물… 백록담 절벽에서 만난 ‘조선의 에델바이스’

위키푸디 2025-05-18 23:5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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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한라산 정상 분화구 남쪽 절벽에 피어 있는 작고 희귀한 식물이 있다. 이름은 ‘한라솜다리’. 줄기가 땅에 바짝 붙어 자라며, 키는 10cm도 채 되지 않는다. 중심에는 노란 꽃이, 그 바깥은 흰 솜털 같은 포엽이 감싸고 있어 얼핏 보면 꽃인지조차 헷갈릴 만큼 작고 소박하다.

이 식물은 ‘조선의 에델바이스’라고도 불린다. 유럽 알프스의 척박한 바위 틈에서도 살아남는 에델바이스처럼, 극한 환경을 버티는 생존력 덕분이다.

극한 환경 속 살아남은 흔적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조선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단순히 장소 때문이 아니다. 이 식물은 한국 한라산 정상에서만 자라며, 그마저도 단 하나의 구간에만 남아 있다. 백록담 분화구 남쪽, 해발 1900m를 넘는 고산지대 중에서도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비탐방 구역에만 분포한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좁은 절벽 사면 안에 군락을 이뤘다. 관찰된 개체 수는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반경 1m 정도 안에 모여 있는 상태로, 일부는 이미 꽃이 진 채 말라 있었다.

외형이나 크기만 놓고 보면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향기도 없고, 색도 화려하지 않으며, 장식적인 아름다움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관광지나 식물원에서는 찾기 어렵고, 존재를 알리는 안내판도 없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그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지나간다. 하지만 이 작은 식물은 지금 한라산 고산 생태계에서 가장 절실하게 보호가 필요한 종 중 하나다.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자생지의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경사면으로, 흙보다는 돌가루에 가까운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풍화작용이 지속되고 있어 토양이 약해진 상태이며, 강수량이 많은 시기에는 붕괴 위험도 높다.

집중호우나 강설, 낙석이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 언제든 사면이 무너질 수 있다. 자리를 옮겨 살 곳도 없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보호 구역을 조성할 수도 없다. 한라산에서도 유독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살아남기 때문에, 그 장소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번식 구조다. 한라솜다리는 번식력이 매우 약하다. 씨앗을 통해 주변으로 퍼지는 구조이지만, 조건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발아가 이뤄지지 않는다. 뿌리로 확장하거나 줄기를 통해 옆으로 번지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개체군이 자리를 잃으면, 같은 종이 다시 그 자리를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식물원에서 보존하기도 어렵다. 고산의 공기, 기온, 일조량, 토양 배수 조건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존재조차 모르면 지킬 수도 없다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무엇보다 문제는, 이 식물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유명세도 없고, 조경에 쓰이지도 않으며, 상품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목받은 적도 없다. 사진으로 남은 자료도 많지 않다. 대부분은 과거 제한된 탐사 과정에서 기록된 것뿐이다.

이름이 언급되는 일도 드물고, 보호가 필요하다는 말조차 좀처럼 닿지 않는다. 결국 지금도 고산 절벽 어딘가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 위협이 다가와도 피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어도 대처하지 못한다. 줄기는 너무 약하고, 뿌리는 너무 얕다. 누군가 한 발을 잘못 디뎌 근처를 지나간다 해도 쉽게 뽑혀나간다.

꽃이 피는 시기도 짧다. 해마다 일정한 시기, 날씨가 맞아야만 개화를 한다. 그 짧은 시기를 놓치면 존재 자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한라산을 수십 번 올랐어도 이 꽃을 본 사람이 없는 이유다.

그래서 지금 이 존재를 기록해야 한다. 사라지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존재할 때 말해야 한다. 보존이라는 말은 멀리 있는 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한라솜다리 자료사진. / 국립생태원 이형종

한라산은 한국 생태계의 상징이다. 그 꼭대기에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생명은 단지 식물 하나가 아니라, 오랜 시간과 기후, 환경을 버티며 살아남은 자연의 마지막 신호일 수 있다.

지금 이 식물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희귀해서가 아니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건, 이 땅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한라솜다리는 무너질 듯한 한라산 사면 끝에 걸려 있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사라지는 건 단지 식물 하나가 아니라, 수천 년 이어진 자연의 기록이다.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에 앞서, 존재부터 알아야 한다. 지금 살아 있는 마지막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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