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보기만 해도 젓가락을 피했다. 매워서 싫었고, 식감도 낯설었다. 밥상에 올라와도 그대로 남겼던 재료였다. 그런데 요즘은 일부러 찾게 된다. 볶아 넣고, 국물에 끓이고, 따로 우려내기도 한다. 예전엔 그저 반찬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걸 안다.
농촌진흥청은 15일, 알칼로이드 함유량이 높은 국산 농산물로 고추 열매와 율무 씨앗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분을 왜 먹는지 알고 고르는 시대다. 입맛이 바뀐 게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알칼로이드는 식물이 해충이나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유기화합물이다. 질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소량으로도 생리 반응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고추 열매에는 캡사이신과 디하이드로캡사이신 같은 알칼로이드가 포함돼 있다. 이 성분들은 지방산 분해를 돕고, 체온을 높이며, 땀 분비를 유도한다. 매운맛의 원인이자 체내 대사 활동과도 연결되는 성분이다.
품종별 함량 차이도 눈에 띈다. 생체중량 100g 기준으로 청양고추는 28.7㎎, 꽈리고추 21.1㎎, 홍고추 3.3㎎, 오이고추는 2.0㎎ 수준이다. 꽈리고추에는 디하이드로캡사이신이 가장 많이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일반적인 캡사이신보다 위 점막에 덜 자극적이며 흡수율이 높다. 체내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용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알칼로이드는 체중 조절과 관련된 작용 외에도 신경 보호 반응과도 관련이 있다. 일부 실험에서는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등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질환에서 이 성분들이 보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됐다. 매운맛으로 알려진 고추에 뇌와 관련된 기능성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추는 날로 먹기보다는 기름에 볶거나 국물 요리에 활용하는 방식이 흡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 디하이드로캡사이신은 열에 안정적이라 조리 후에도 성분 손실이 크지 않다. 꽈리고추는 볶음이나 찜 요리로 먹는 것이 좋고, 청양고추는 다진 양념으로 활용하면 매운맛과 성분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단, 위가 약한 사람은 공복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율무를 다시 보게 만든 성분
율무에서도 알칼로이드가 확인됐다. 씨앗에서는 스퍼미딘 계열 유도체 3종이 검출됐다. 이 물질들은 혈류 흐름을 원활하게 하며, 뇌 속 염증 반응을 줄이는 데 관여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된 뇌 환경 변화에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율무는 식이섬유 함량이 높고 포만감을 줘 식사량 조절에 적합하다. 소화와 흡수가 천천히 이뤄져 혈당 변화도 완만하게 유도할 수 있다. 이번에 검출된 알칼로이드는 여기에 신경세포 보호 가능성까지 더해졌다. 섭취를 통해 몸 안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가 과학적 수치로 제시된 셈이다.
율무는 겉껍질이 단단해 그대로 섭취하면 소화 흡수가 어렵다. 반드시 불린 뒤 삶아야 하며, 밥에 섞어 짓거나 죽 형태로 끓이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물에 6시간 이상 불린 뒤 부드럽게 삶는 것이 좋다. 율무차로 마실 경우에도 충분히 끓여 성분이 우러나게 해야 한다.
주의할 점도 있다. 율무는 찬 성질이 있어 속이 냉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과다 섭취 시 설사를 유발할 수도 있다. 하루 30g 내외의 적당한 양을 유지하고, 장기 복용보다는 주기적으로 섭취하는 방식이 권장된다.
농촌진흥청은 율무에 대한 성분 확인 결과를 생약학회지에 게재했다. 고추와 율무를 포함해 앞으로 700종 이상의 국산 농식품에 대한 알칼로이드 정보를 정리해나갈 계획이다. 관련 내용은 2027년부터 ‘농식품올바로’ 시스템을 통해 일반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이 플랫폼에서는 식품별 함량, 구성 성분, 섭취 유의사항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식품이 단순한 영양 공급원을 넘어 어떤 구조와 성분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고추와 율무 외에도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는 식재료
알칼로이드는 고추와 율무 외에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에 포함돼 있다. 감자, 가지, 토마토가 대표적이다.
감자의 싹이나 껍질에는 솔라닌이라는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다. 쓴맛이 나는 이 성분은 농도가 높을 경우 메스꺼움이나 복통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싹을 떼어내고 껍질을 벗긴 뒤 충분히 익혀 먹으면 문제되지 않는다. 감자전, 찜, 볶음 등 대부분의 조리 과정에서 솔라닌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가지 껍질에는 나스닌이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철분과 결합해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하는 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껍질째 구워 먹거나 조림으로 조리하면 성분 손실 없이 섭취할 수 있다. 가지를 너무 오래 익히면 식감과 색이 무너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조리하는 게 좋다.
토마토는 완전히 익기 전, 푸른빛을 띨 때 톰아틴이라는 알칼로이드를 함유한다. 덜 익은 상태로 과다 섭취하면 위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는 톰아틴 함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생으로 먹어도 문제가 없다. 살짝 익히면 소화가 더 쉬워진다.
이처럼 알칼로이드는 조리 방법과 숙성 상태에 따라 위험 요소가 줄고, 성분의 기능을 더 잘 흡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떤 식재료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를 알고, 먹는 방식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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