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나 야산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풀 한 포기가 약초였다면 어떨까. 왕고들빼기가 그렇다. 산삼 못지않은 약효를 지녔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름도 생소한 이 풀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채취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을 정도다. 실제로 서울 외곽 녹지대에서도 절단된 줄기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방증이다.
왕고들빼기는 도시 외곽의 나지막한 산, 공터, 하천 인근처럼 볕이 드는 곳에서 자생한다. 조건만 맞으면 특별한 관리 없이도 스스로 번식한다. 들판 한복판이나 밭둑에서도 자주 목격되며, 인근 주민들이 이미 활용 중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름조차 모른 채 그냥 지나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햇볕 드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란다
왕고들빼기는 국화과에 속하는 초본식물이다. 봄이면 땅에 바짝 붙은 형태로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키가 2m에 이를 만큼 급격히 성장한다. 잎은 어긋나며 깊게 갈라지고, 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며 크기와 형태가 조금씩 달라진다. 상처가 나면 흰 유액이 흐르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이 특징 때문에 ‘새똥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꽃은 7월부터 9월 사이에 연한 노란색으로 피고, 씨앗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다. 가을이 지나면 땅 위의 줄기와 잎은 모두 사라지고, 생명은 뿌리 속에 남는다. 이듬해 다시 땅을 뚫고 올라온다. 자연에서 순환하며 자라나는 구조다.
특히 도심 근처의 바위 틈이나 황무지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덕분에 야생에서도 생명력을 쉽게 유지한다.
비슷한 식물과 헷갈리지 마세요
왕고들빼기는 지역에 따라 ‘쓴둥이’, ‘고개재’, ‘수엽똥’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흔히 먹는 고들빼기김치의 재료인 고들빼기와는 다른 종류다. 생물학적 분류상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줄기 길이나 잎의 갈라진 형태, 유액 분비 여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가는잎왕고들빼기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왕고들빼기는 잎이 넓고 깊게 갈라지는 반면, 가는잎왕고들빼기는 선형에 가깝고 매끄럽다. 자생지나 수확 시기에 따라 두 식물이 섞여 자라기도 하지만, 외형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약효부터 식용까지 활용법 다양
왕고들빼기의 특징 중 하나는 전초 전체가 약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뿌리, 줄기, 잎, 꽃에 이르기까지 모두 활용된다. 사포닌, 토코페롤, 플라보노이드, 비타민C, 이눌린 등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다. 사포닌은 피로 회복과 체력 증진, 이눌린은 혈당 조절과 장 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항산화 작용을 돕는 플라보노이드는 혈압 조절에도 좋다.
한방에서는 왕고들빼기를 ‘배경도’라는 이름으로 사용해 왔다. 해열, 진통, 해독 등에 쓰이며, 약재로서의 기록도 오래됐다. 남성에게는 정력 강화, 여성에게는 갱년기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민간 설도 있다.
식용으로는 봄철 어린 순을 쌈채소로 활용하거나, 나물로 데쳐서 무쳐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즙을 내 주스로 마시거나, 설탕에 절여 발효시켜 발효액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맛은 쌉싸름하고 향은 진한 편으로, 입맛을 돋우는 데 효과적이다.
뿌리째 뽑지 말고 중간만 자르세요
왕고들빼기는 성장력이 워낙 강해 중간 줄기만 잘라도 다시 돋아난다. 전체를 뽑아버리면 생장 주기가 끊기므로 자생력 유지를 위해선 중간 절단 방식이 권장된다. 일부러 뿌리까지 뽑는 행위는 오히려 군락지를 파괴할 수 있다. 특히 공공녹지나 보호구역에서는 채취 자체가 금지된 경우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인 만큼 무분별하게 캐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단순한 잡초로 넘기기보다 그 가치를 알고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자연의 흐름과 생명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