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며 원화 역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결제시장 구조와 금융정책, 통화주권 등 우리 경제 전반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원화의 진화] 시리즈는 원화의 디지털화와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제도·시장·정책의 쟁점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자본 유출과 디지털 통화 주권 약화 우려가 커지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와 송금이 일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의 경쟁력 강화와 자본 유출 방지, 금융 혁신의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통화정책과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 규제 권한 배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17일 암호화폐 포트폴리오 관리 플랫폼 코인스탯(Coinstats)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스테이블코인의 대부분은 테더(USDT)나 USD코인(USDC)과 같은 미국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주도하고 있다. 이는 국제 무역과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 접근에는 유용하지만,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환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 유출을 야기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달러 의존, 자본 유출 막아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3월 국내 거래소에서 유출된 가상자산은 총 56조8067억원이다. 이중 테더(USDT)와 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47.30%인 26조8706억원이며, 이는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 접근을 위해 불가피하게 달러화로 자금을 이동시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경제 패권 확장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숭실대 법학과 박선종 교수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이 대중화되면 기존 통화 시스템의 안정성이 일부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더불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급부상한 배경에는 탈 현금화 사회로의 전환이 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35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4년 지급수단·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지급수단 중 현금 이용 비중(건수 기준)은 15.9%로 집계됐다.
또한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1600만명에 달한다.
이 같은 필요성에 반해 통화정책 약화, 금융 안정성 저해, 규제 공백 등 여러 문제점 또한 제기되고 있다.
통화정책 악영향, 이용자 보호공백 우려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지난 4월 발표한 ‘2024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지급 수단적 특성을 내재하고 있어 이용이 확대될 경우 법정통화 수요를 대체하면서 통화 주권을 침해하고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신보성 선임연구위원은 2024년 발행한 ‘트럼프행정부 스테이블코인 육성책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의 등장은, 은행 말고도 통화 창출권을 가진 민간업자가 추가로 생겨남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연히 은행과 코인업자 간의 시뇨리지(화폐 발행으로 얻는 이익) 창출 경쟁이 격화되면서 통화량은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늘어난 통화를 매개로 부채 양산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앞서 발행 구조, 관리 주체, 규제 체계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태평양 김효봉 변호사는 글로벌 블록체인 리서치 기업 포필러스(Four Pillars)의 리포트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금융기관 등 사적 주체가 발행하는 지급수단이므로 신뢰성을 담보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발행인 규제, 준비자산 규제 및 파산 시 이용자 자산 보호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자금세탁이 용이해진다거나 하는 우려가 있고, 가상자산 시장의 불안정이 금융시장으로 전파된다거나 은행 예금 규모가 줄어 통화정책 같은 부분에 악영향을 미치고 은행의 손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며 “미국 같은 경우 스테이블코인에 이자가 붙지 않도록 하는 지니어스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벤치마크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신탁형 스테이블코인 같은 경우는 현재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준비자산을 은행에 100% 예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부분에 대해 일정 부분을 은행에 예치하도록 하는 규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미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도입 중인 주요국들은 준비금 100% 보유, 투명성·공시 강화, 발행사 자본 요건, 자금세탁방지(AML·Anti-Money Laundering)과 테러자금조달금지(CFT·Combating the Financing of Terrorism) 등 엄격한 규제 요건을 도입하거나 도입을 추진 중이며, 일부 국가는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금지 등 차별화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허가형(permitted) 블록체인은 개방형(public) 블록체인과 달리 해킹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고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더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도 준비해 무대에서 사용될 수 있는 확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정두 선임연구위원은 “외화 원화 구별 없이 현재 국내에서 거래 중인 스테이블코인 이용자들의 보호공백이 없도록 제도 보완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미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유통이 됐는데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필요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한다면 영업행위 규제와 같은 건전선 규제 세팅에 초점을 맞추고 국내에 유통 중인 외화 스테이블코인에도 유사하게 적용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테더나 USDC와 다르게 우리나라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됐을 때 건전성 요인을 맞추면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이런 사업 모델이 불투명한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산업의 새로운 육성과 시도 같은 측면도 중요하지만 일반 이용자들이 부작용을 뒤집어쓰지 않도록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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