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밥상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재료들이 많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음식 맛을 살리고 밥 한 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꼭 필요하다. 고춧잎도 그런 재료 중 하나다. 알싸한 풋고추 맛이 은은하게 배어 있고, 오래전부터 나물이나 반찬 재료로 사용돼 왔다. 열매만 먹는 줄 알았던 고추에서 잎까지 챙겨 먹는 방식은 오래도록 이어진 생활 방식이다. 버릴 것 없이 알차게 사용하는 방식은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재료가 일본에서는 대부분 버려진다고 한다.
잎까지 먹는 한국식 고추 활용법
한국에서 고추는 ‘열매만 먹는 작물’이 아니다. 고추를 따내는 여름철, 가지치기를 하며 생긴 잎과 줄기 중 일부는 식재료로 활용된다. 특히 고춧잎은 1800년대 조선시대 책인 '규합총서'에도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랜 기간 밥상에 올라왔다. 말린 고춧잎은 김치와 장아찌의 부재료가 되었고,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엔 영양 공급원으로 쓰였다.
이처럼 오랫동안 식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고춧잎이지만, 일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일본에선 고추 잎이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돼 대부분 수확 과정에서 버려진다. 마치 깻잎이나 들깻잎이 일본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는 것처럼, 고춧잎 역시 외면받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춧잎이 별도의 반찬 재료로 인식된다. 고춧잎 무침은 특히 인기 있는 밑반찬 중 하나다. 향이 진하고 쌉쌀한 맛에 은근한 매운맛까지 어우러지며 입맛을 당긴다. 채취 시기는 보통 고추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7월부터 10월 사이인데, 이때 잎이 더 부드럽고 향이 진하다.
잎은 데쳐야 풋내가 사라진다. 살짝 데쳐 물기를 짠 뒤 마늘, 참기름, 간장, 깨소금 등으로 양념하면 아삭한 식감과 함께 풍미가 살아 있는 반찬이 완성된다. 단, 데치는 시간이 길면 질겨질 수 있으니 짧고 빠르게 익혀야 한다. 데친 고춧잎을 찬물에 헹구면 특유의 질감도 유지할 수 있다.
반찬에서 쌈 채소로, 활용법 넓어진 고춧잎
고춧잎은 밥반찬으로도 좋지만 쌈 채소로도 제격이다. 깻잎보다 얇고 향이 진하지 않아 부담 없이 쌈으로 즐기기 좋다. 고춧잎에 쌈장이나 고추장을 살짝 곁들이면 짠맛과 매운맛이 적당히 어우러져 고기와 잘 어울린다. 비타민이 풍부한 잎을 쌈 형태로 먹는다는 점에서 영양까지 챙길 수 있다.
이렇게 쓰임새가 넓지만, 고춧잎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여름이나 초가을 장터에서나 겨우 보이는 재료다. 이유는 단순하다. 상품 가치가 높은 열매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경향 때문이고, 잎은 따로 팔려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나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이용하면 계절에 맞는 싱싱한 고춧잎을 구할 수 있다. 최근엔 일부 온라인 몰에서도 냉동 고춧잎이나 데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보관 시에는 데쳐서 소분해 냉동하면 1년 내내 활용 가능하다.
고춧잎무침 만들기, 어렵지 않다
고춧잎무침을 만들 땐 먼저 고춧잎을 데쳐야 한다. 고춧잎 200g을 끓는 물에 1분 정도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궈 아삭한 식감을 살린다. 물기를 충분히 짠 다음, 볼에 담아 무침을 준비한다.
양념은 진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을 넣고 고루 섞는다. 양념을 고춧잎에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주면 된다. 이때 데친 뒤 물기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양념이 묽어지고 식감도 떨어지기 때문에 꼭 눌러 짜는 것이 중요하다. 고춧잎 자체에 은은한 쌉쌀한 맛이 있어, 양념은 과하지 않게 간단하게 조절하는 게 좋다.
고춧잎을 활용한 장아찌도 있다. 보통은 마른 고춧잎 100g을 물에 2시간 정도 충분히 불려 사용한다. 불린 고춧잎은 물기를 가볍게 짜고, 간장 1컵, 식초 1컵, 물 1컵, 설탕 3큰술을 넣고 한소끔 끓인 양념을 부어 숙성시키면 된다.
양념은 뜨거운 상태에서 부어야 잎이 더 부드러워진다. 여기에 마늘 5쪽을 편으로 썰어 넣고, 홍고추 1개를 송송 썰어 함께 넣으면 향과 색이 더해진다. 하루 정도 숙성한 뒤 냉장 보관하면 고춧잎장아찌로 오래 즐길 수 있다. 장아찌용 고춧잎은 데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질긴 잎일 경우에는 살짝 데쳐도 무방하다.
농업 기술이 만든 ‘잎 전용 고추’의 등장
고춧잎의 잠재력은 농업 기술 발전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2022년 농촌진흥청은 잎을 수확하기 위해 특별히 개량한 품종을 개발했다. 잎 전용 고추 품종이다. 이 품종은 일반 고추보다 잎이 무성하고 향도 짙다. 게다가 일반 고춧잎보다 혈당 저하에 효과적인 성분이 많아, 당뇨 개선 식품으로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다.
해당 품종은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성분이 많아 혈당이 오르는 속도를 늦춰주는 기능이 있다. 아직은 실험 단계지만, 추후 건강식품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자원으로 거론된다.
단, 고춧잎은 일부 성분으로 인해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카테킨 성분은 많은 양을 섭취할 경우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고, 불면이나 두근거림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특히 와파린이나 혈액 희석제를 복용 중인 사람은 비타민 K 함량 문제로 섭취를 피해야 한다.
한편, 쌈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계절이나 나물반찬이 부족한 시기에도 고춧잎은 식탁에 올릴 수 있는 좋은 재료다. 데쳐서 보관해두면 계절에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고, 조리법도 간단해 일상 반찬으로 부담이 없다. 이처럼 잎 하나까지 챙겨 먹는 방식에서 한국 식문화의 세심한 특징이 드러난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