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예술로 말하는 환경이야기④ 단단한 길 위에 핀 연약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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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예술로 말하는 환경이야기④ 단단한 길 위에 핀 연약한 힘

문화매거진 2025-05-16 09:36: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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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결혼 전까지 살았던 집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처음엔 정돈되지 않은 잡초밭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깔끔하게 정비되어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로 자리 잡았다. 흙길엔 아스팔트가 깔렸고 지저분했던 풍경은 훨씬 산뜻하게 변했다. 나도, 부모님도 그 변화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처럼 공원을 지나 하교하던 중 나는 단단하고 고른 길 위 어느 한 지점에서 자꾸만 발바닥에 울퉁불퉁한 감촉을 느꼈다. 처음엔 ‘아스팔트를 잘못 깔았나?’ 싶었지만 걷기에 큰 불편은 없어 그냥 지나쳤다. 시간이 갈수록 그 이상한 부분은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결국은 며칠 후 그 단단하던 아스팔트가 갈라졌다. 벌어진 아스팔트 틈 사이로 보인 건 아주 작은 풀 한 포기였다. 

어린 마음에 그 풀의 지경을 넓혀주고 싶어 손가락으로 틈을 벌려보기도 했고 아스팔트를 부러뜨려 보려고도 했다. 이미 많이 솟아있었고 틈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풀 따위에 밀려 갈라졌기 때문에 나도 충분히 힘을 보태어 풀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단단한 땅을 밀어올린 건 분명 연약한 풀 한 포기였는데 나는 아스팔트의 힘 앞에서 가루 하나 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어렸어도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자연은 약해 보이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 큰 잡초덤불(Great Piece of Turf), 1503
▲ 큰 잡초덤불(Great Piece of Turf), 1503


독일 르네상스 대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활동한 화가로 정밀한 관찰력과 과학적 사고를 예술에 녹여낸 선구자였다. 무엇보다 기술자로서의 화가의 지위를 거부하고 귀족과 동등한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자각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높였다. 많은 사람이 그를 뛰어난 판화가나 종교화의 거장으로 기억하지만 나에게 있어 뒤러를 인상 깊게 각인시킨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큰 잡초덤불(Great Piece of Turf, 1503)’이다. 

그가 그린 건 특별한 꽃도, 상징적인 나무도 아니다. 민들레, 질경이, 클로버 등 누구나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름 없이도 살아가는 풀들이었다. 하지만 이 식물들은 뒤러의 손길 아래에서 마치 초상화처럼 생명감 있게 살아 숨 쉰다. 잎맥 하나, 줄기의 방향과 질감까지도 놓치지 않고 묘사했다. 이 그림은 마치 식물도감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생명의 존엄함을 담아낸 진지한 관찰 기록처럼도 느껴진다. 

그림을 그려낸 시선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풀을 볼 때는 보통 내려다보지만 뒤러는 그 시선을 낮춰 같은 눈높이에서 풀을 바라보았다. 아니, 오히려 풀을 올려다 보는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는 뒤러가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나 장식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의 가치 있는 대상으로 인정했다.

이 작품의 의미는 그의 자화상과 비교했을 때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26세였던 1498년엔 당당한 귀족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냈고 2년 후엔 정면을 응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스스로를 묘사하기까지 했다. 자기 모습을 정면으로 내세웠고 대칭적인 구도에 관객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으며 어두운 배경 속에서도 빛나는 머릿결과 손끝을 강조한 모습은 성화 속 예수를 묘사할 때만 허락되었던 관행이었다. 겸손을 미덕으로 삼던 시대에 한 젊은 화가가 예수의 형상을 빌려 자신을 그린다는 것은 당돌함 혹은 자의식 과잉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뒤러가 단순히 자신을 과시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술가가 하나님의 창조성을 계승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인간의 이성과 창조력에 대한 신념을 자화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뿐이었다.

이처럼 자신을 그릴 때에는 과하다 싶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했지만 3년 뒤에 그려진 이 잡초 그림은 있는 그대로 미화도 없이, 극도로 낮은 자세로 표현되었다. 나는 이름 없는 풀 앞에서 겸허해진 그 마음의 이유가 ‘관찰’과 ‘존중’이라는 예술가적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뒤러가 자화상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큰 잡초덤불(Great Piece of Turf, 1503)’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진실성을 보여준다. 인간은 위대하지만, 자연은 더 크고 정교하며, 보잘것없는 풀조차도 우주를 구성하는 한 요소임을 그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풀을 그린건 생명을 향한 경외감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이름도 없는 존재들이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향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인간과 자연이 다르지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 지상주차장 틈에서 자라난 풀 한 포기 / 사진: 윤나애 제공
▲ 지상주차장 틈에서 자라난 풀 한 포기 / 사진: 윤나애 제공


얼마 전 지상주차장에서 또다시 나는 그 강인함을 마주했다. 부러진 스토퍼의 틈 사이에서 자라나는 풀 한 포기를 발견한 것이다. 죽어 있는 듯한 까만색 콘크리트 사이, 생명은 여전히 움트고 있었다. 이렇듯 일상은 자꾸만 나에게 자연은 나약한 것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끈질기고 강인한 존재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힘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단단하고 차가울수록 더 낮고 깊은 곳에서부터 쉬지 않고 올라오는 조용한 강인함.

그 작은 자연 하나가 나에게 알려준 삶의 태도를 나는 오늘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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