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원정팀 라커룸이 홈팀 라커룸보다 완성도가 아쉬운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전 세계 공통 '홈 이점' 중 하나로 암묵적인 인정을 받는다.
그래서 이정효 광주FC 감독의 작심 발언을 더욱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14일 이 감독은 수원FC와 2025 하나은행 코리아컵 16강전을 앞두고 "K리그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며 운을 뗀 뒤 "원정팀 라커룸이 많이 빈약하다. 관리하시는 분들은 힘들겠지만 원정팀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수원FC 홈구장인 수원종합운동장의 원정팀 라커룸 시설에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수단이 기본적으로 이용하는 대기실이 비좁을 뿐더러 워밍업을 위한 훈련장과 회복시설인 마사지 테이블은 한 방에 몰려있고, 감독실은 마련돼있지 않아 복도에서 코칭스태프와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형편이다. 관련해 홍명보 감독이 울산HD 재직 시절 시설 미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 감독은 해당 발언을 하기 전 수원FC 관계자에게 미리 자신이 취재진에게 원정팀 라커룸과 관련해 얘기를 꺼낼 거라 언질을 줬다. 홈팀 수원FC에 돌발 상황을 안기지 않기 위해 배려한 것.
수원FC 측도 해당 문제를 인지했기 때문에 이 감독에게 별다른 제재나 첨언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후 취재진과 경기 전 인터뷰를 가진 김은중 수원FC 감독은 "원정팀 라커룸에 기본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라며 "원정팀에 대한 예우이자 우리 팀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며 이 감독 발언에 동조했다.
수원FC는 올 시즌을 앞두고 원정팀 라커룸 시설 개선에 대한 요청을 수원도시공사 측에 보냈다. 수원종합운동장 1층을 대대적으로 공사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원정팀 라커룸도 함께 바꾸겠다는 의중이었다. 그러나 예산 및 소통 문제 등으로 원정팀 라커룸은 충분히 나아지지 못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수원종합운동장은 수원FC뿐 아니라 여러 기관이 함께 쓰는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원정팀 라커룸 쪽에 이미 사무실을 입주한 기관들이 많다. 수원FC 홈경기를 위해 이들을 내보내는 건 수원도시공사 측에 마뜩지 않은 일인 데다 복합적이고 부수적인 여러 문제를 낳는다. 적어도 수원종합운동장 시설만으로 현 사안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현재 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경기장 시설기준 가이드라인'을 통해 라커룸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놨다. 옷걸이장 탑재 벤치, 마사지 테이블, 샤워부스 등 11개 항목에 대한 기준을 지키면 K리그 클럽 라이선스 취득을 위한 필수 요건인 A등급을 충족할 수 있다.
이번 수원FC 원정팀 라커룸에서 문제가 된 선수대기실 면적, 독립된 감독실, (독립) 치료실 등은 모두 B등급에 해당한다. 즉 해당 시설이 미비하더라도 제도적으로 K리그 참가를 규제할 수는 없다.
상위 기관인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도 원정팀 라커룸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선수대기실 등 선수육성을 위한 훈련 최소 기반시설에 대해 A등급이 아닌 B등급을 부여했기 때문에 해당 시설이 완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AFC 주관 대회를 참가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수원FC 원정팀 라커룸 사안과 관련해 프로연맹 관계자는 "라커룸 시설은 클럽 라이선스 등급의 문제이지 K리그 참가 가능 여부를 판가름하는 요소는 아니"라며 "프로연맹에서는 추후 K리그 경기장 시설기준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의 발언으로 불거진 원정팀 라커룸 문제는 K리그의 질적 향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화두다. K리그는 양적 팽창을 우선시하며 참가팀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둬왔다. 2022시즌 김포FC, 2023시즌 충북청주FC와 천안시티FC가 K리그2에 새로 참가했으며 올 시즌에는 화성FC가 K리그2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과정에서 이전부터 시설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대표적으로 2023시즌 김포FC가 K리그2에서 승격권에 위치해있을 떄 경기장 규모가 K리그1에 부합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미흡한 경기장 시설 문제만 놓고 보면 이 감독이 몸담은 광주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K리그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적 팽창에서 질적 향상으로 패러다임을 옮겨야 한다. K리그 경기를 찾는 관중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안기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도 필수적이다. 선수들이 경기 당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제반 시설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원정팀 라커룸과 관련한 문제는 나아가 경기장 시설 전반에 대한 문제로 확대할 수도 있다. 시설 개선이 이뤄줘야 선수, 팬, 감독 등 경기 관계자 전원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이 감독의 작심 발언이 K리그 전체 구단의 시설 개선으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돼야 한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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