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황수민 기자] 국내 화장품 업계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신흥 강자인 구다이글로벌과 에이피알(APR)이 가파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중심의 ‘빅2’ 구도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기존 시장구도에 균열이 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빅3’로 꼽히던 애경산업은 실적 부진과 함께 매각 추진까지 겹치며 사실상 경쟁 구도에서 밀려난 모습이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화장품 브랜드 ‘조선미녀’로 알려진 구다이글로벌이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3237억원, 영업이익 1406억원을 기록, 비약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31.9%, 104.2%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 지난해 인수한 크레이버코퍼레이션(매출 3033억원, 영업이익 700억원)과 티르티르(매출 2736억원, 영업이익 391억원)의 실적을 합산하면 전체 매출은 9000억원대, 영업이익은 2497억원에 달한다. 이익 기준으로만 보면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영업익 2204억원), LG생활건강 화장품 부문(1582억원)을 제치고 업계 1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업계에선 공시되지 않은 해외 법인과 관계사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매출이 1조원을 넘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구다이글로벌은 2015년 중국 시장에서 K뷰티 유통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한한령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2019년 조선미녀를 인수하며 성장 궤도에 올랐다.
2020년 매출 1억원에 불과했던 조선미녀는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며 2023년 1400억원, 지난해 3237억원까지 급성장했다. 구다이글로벌은 이후 인기 브랜드 보유 회사를 잇따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또 다른 신흥 강자인 에이피알도 성장세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에이피알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7228억원, 영업이익 122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8.0%, 17.7% 증가한 수치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 실적이다.
올해 1분기에도 성장세는 계속됐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8.6% 증가한 2660억원, 영업이익은 96.4% 늘어난 546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다시 썼다. 특히 전통적으로 1분기가 비수기인 화장품 업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성장으로 평가된다. 영업이익률도 20.5%에 달해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그중에서도 해외 매출 성장세에 대한 주목도가 남다르다. 에이피알의 작년 해외 매출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400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 1분기에는 1900억원으로 186% 늘었다. 해외 매출 비중 역시 71%로 상승했다. 에이피알은 올해 연매출 1조원 돌파를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기존 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는 판매 채널을 확대하는 한편 글로벌 전역을 무대로 고객 접점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브이티, 달바글로벌, 더파운더즈 등도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브이티는 지난해 매출 4317억원, 영업이익 110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46%, 144% 증가했다.
달바글로벌은 매출이 2021년 690억원에서 지난해 3091억원으로 연평균 65%씩 성장했다. 더파운더즈는 지난해 매출 4278억원, 영업이익 1457억원으로 각각 299%, 264% 올랐다.
같은 기간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매출 3조8851억원, LG생활건강 화장품 부문은 2조8506억원으로 매출 규모에서 굳건하게 1·2위를 유지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지난해 매출 6791억원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468억원으로 24%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애경그룹이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애경산업 매각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신흥 브랜드들의 폭발적 성장은 K뷰티의 글로벌 인기 확산과 맞물려 있다. 과거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최근에는 ‘가성비’를 앞세운 인디 브랜드들이 틱톡 등 숏폼 콘텐츠를 활용해 미국과 유럽의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자)를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20.6% 증가한 102억달러(한화 약 15조원)로 2021년(92억달러)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미국 시장에서는 프랑스를 제치고 수입 화장품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K뷰티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은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대형 브랜드는 조직 구조상 신제품 출시가 상대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지만 인디 브랜드들은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맞춰 보다 신속하게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기동성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인디 브랜드들은 단순한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넘어 차별화된 기능성 제품군 확보, 글로벌 확장 전략, 효과적인 마케팅 운영,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의존성 극복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