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먹는 과일 바나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왔다. 밀·쌀·옥수수에 이어 네 번째로 중요한 식량 작물로 꼽히는 바나나는 수억 명의 끼니를 책임져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재배지 상당수가 무너지고 있다. 머지않아 중남미·카리브 해 생산지 대부분이 재배에 부적합한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경고까지 등장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나나 재배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자선단체 ‘크리스천 에이드’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기온 상승, 집중호우, 해충과 곰팡이까지 겹치면서 바나나 수확이 줄고 있다고 적혀 있다.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콜롬비아처럼 수출 중심의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 지역은 바나나 수출량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놓였다.
생산 줄고 병해 늘고… 바나나 재배 불가능해지는 땅
중남미와 카리브 해는 세계 바나나 수출량의 80% 이상을 담당한다. 그러나 보고서에서는 이 지역 다수가 2080년까지 바나나 재배에 적합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온이 오르고 폭우가 반복되면서 병해충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특히 곰팡이성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작물은 점점 시들고, 농민은 수확을 포기하고 있다. “기후 변화가 작물을 죽이고 있다”는 현지 농부의 말은 상황을 압축한다. 팔 작물이 없다는 건 생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현재 바나나를 기르기 위한 기후 조건 자체가 붕괴 중이다. 일정한 기온과 수분이 유지돼야 하는데, 지나친 비는 뿌리를 썩게 하고 강풍은 잎을 찢는다. 광합성이 어렵고 과육도 상한다. 출하할 수 없는 과일은 수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단일 품종 캐번디시, 기후 변화에 속수무책
지금 유통되는 바나나 대부분은 '캐번디시' 품종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바나나 수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왔다. 문제는 이 품종이 지나치게 단일하다는 점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한 품종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병충해가 발생하면 모두가 똑같이 감염된다. 하나의 병이 세계 전체 바나나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캐번디시는 민감한 작물이다. 온도는 15~35도 사이여야 하고, 습도도 일정해야 한다. 바람이 조금만 강해도 잎이 찢어진다.
작은 이상 기후에도 치명적이다. 기존처럼 대량 생산이 어렵고, 생산 단가는 오르기 시작했다. 바나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타격은 고스란히 저소득 국가로 향한다.
보고서는 단일 품종 중심의 생산 체계가 공급망을 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특정 품종에 의존하는 방식은 위기 대응에 취약하다. 품종 전환과 유전 다양성 확보가 시급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열량 채우는 필수 식품… 바나나가 끊기면 생계도 끊긴다
바나나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하루 열량을 채우는 식사 대용 식품이다. 전 세계 바나나 생산량 중 약 80%는 현지에서 소비된다. 수출되지 않은 대부분이 현지 주민의 끼니로 쓰인다.
특히 바나나는 포만감이 높고 섭취가 간편하다. 껍질만 벗기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조리 과정이 없어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바나나는 당분과 칼륨이 풍부하다. 에너지를 빠르게 공급하고 나트륨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피로감을 낮춰주는 성분도 들어 있다. 식이섬유도 많아 장을 비우는 데 유리하다.
질감이 부드러워 아이나 고령자도 부담 없이 삼킬 수 있다. 이 모든 특성은 바나나가 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과일인지 설명해준다.
식량 위기라는 말이 먼 이야기가 아니다. 바나나 수확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끼니를 의지하던 사람들의 식탁부터 흔들린다. 슈퍼마켓이 아니라 농민들의 밭에서 그 충격이 먼저 터진다.
생산지는 흔들리고, 공급망은 불안해진다
기후 변화가 식량 생산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바나나는 그 타격을 가장 먼저 받고 있는 작물 중 하나다. 보고서를 낸 단체는 기후를 악화시킨 나라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화석연료를 써온 국가들이 이제는 피해 지역을 도와야 할 때다. 기후 위기에 책임 없는 사람들이 먼저 피해를 입고 있다.
지금 바나나 산지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비는 너무 많이 오거나 너무 적게 오고, 기온은 예측할 수 없다. 병은 더 빨리 번지고, 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생계를 잃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 송이 바나나 뒤에 수억 명의 식사가 달려 있다. 더는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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