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땀 위에 쌓은 신뢰, 그리고 열정의 기록
사진=김남근 기자
- 골프를 넘어 사람을 트레이닝하다
- 운동을 사랑한 청년이 만든 열정의 기록
선종협 주식회사 글로리어스 대표에게 ‘사업’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품었던 운동선수의 꿈은 트레이너라는 직업으로 연결되었고, 트레이너로서의 성취는 예상치 못한 확장의 길로 이어졌다. 단순히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선수가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서포터’로서의 정체성이 그를 움직였다. 체계보다 진심, 시스템보다 관계. 글로리어스는 그런 그의 철학에서 출발했다. 그 길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 주식회사 글로리어스
운동이 좋아 시작한 일, 사명이 되다
“저는 사무직은 못 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선종협 주식회사 글로리어스(이하 글로리어스)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출발점은 아주 단순했다. 운동이 좋았고,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와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선수의 길은 일찍 닫혔고, 그는 대신 ‘선수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경희대학교 스포츠의학과에 진학하며 트레이너라는 진로를 선택한 그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자격증과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현장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2학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너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피트니스 관리를 맡으며 현장에서의 감각을 익혀갔다. 동시에 모교 농구부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선수 트레이닝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체험하게 됐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탄탄한 실력과 열정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뜻밖의 소득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는 돈벌이보다 즐거움이 더 컸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성과를 내니까 정말 신이 났죠”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한 가지 모순에 부딪혔다. 자신은 선수들의 회복과 퍼포먼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일부 회원은 단순히 가벼운 운동이나 대화만을 원했다. “저는 누군가의 몸을 좋게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그걸 기대하지 않더라고요. 그게 좀 허탈했어요”라고 말하며 열정이 허공에 흩어지는 경험 속에서 다시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 무렵, 골프선수 트레이닝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골프 시장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는 확신을 가졌다. 골프는 시장이 크고, 구조적으로 더 깊이 있는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아버지가 골프를 좋아했기에 어릴 때부터 접했던 종목이기도 했다. 채용 공고에 지원했을 당시 처음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안을 거절당했지만, 운명처럼 다른 경쟁자들이 다른 진로를 택하며 결국 그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급격히 바뀌었다. 선수들을 서포트하는 일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실패로 다져진 글로리어스의 뿌리
사업의 시작은 철저한 ‘현장’이었다. 선종협 대표는 처음 골프 투어밴 트레이닝 팀에 합류했을 당시, 시스템도 없고 정해진 프로세스도 없었다. 트레이너는 단 두 명, 선수는 예상을 훌쩍 넘는 수십 명. 하루아침에 27명의 선수를 4명이 나눠 맡게 되면서, 그는 처음으로 ‘시스템의 부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체감했다. 그는 “한 명당 6~7명씩 맡았는데, 도저히 감당이 안 됐어요. 그냥 눈앞에 닥친 일들을 발로 뛰며 해결할 수밖에 없었죠”라고 전했다.
급하게 동료들을 섭외하고, 컨테이너를 임대해 운동 공간을 확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중 팀을 이끌던 초기 대표가 자금 문제로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대부분의 사람이 떠난 상황에서 선 대표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남기로 결정했다. 그냥 이 일이 재미있다는 이유였다. 돈도 없었고, 당장 수익도 없었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투어밴의 리스비를 자비로 부담하며 1년만 더 운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손익을 계산하지 않은 선 대표만의 ‘책임 경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그가 받았던 월급은 200만 원. 대학 시절 월수입의 절반도 미치지 못했었기에 말 그대로 ‘거꾸로 가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트레이닝 현장에서 선수들의 상태가 개선되고, 경기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마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큰 보람을 느꼈다. 이는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 됐다. 그래서 결국 선 대표는 정식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시작은 여전히 열악했다. 투어밴은 물론, 전용 센터조차 없어 지인의 헬스장을 빌려 가며 운영을 시작했다. 이 시기 그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바로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라는 원칙이었다. 직접 선수들과 함께 부딪히고, 움직이고, 변화하는 순간들을 통해 그는 단단한 운영 철학을 갖게 됐다.
선 대표는 “사업이 뭐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결국은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진심으로 하느냐가 핵심이었습니다”라며 “현장의 혼돈 속에서의 차디찬 경험은 이후 글로리어스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뿌리가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 주식회사 글로리어스
진짜 기반은 결국 ‘현장’이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선종협 대표는 더 많은 가능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글로리어스 논현점을 시작으로 신안CC, 천안, 워커힐까지 전국 주요 지역에 센터를 확장했고, 트레이닝 외에도 교육사업, 스포츠 음료 제조, 보디빌딩 대회 개최 등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 바쁘게 달리는 동안 외부에서는 글로리어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브랜드처럼 보였지만, 내부 사정은 달랐다.
“확장을 통해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근데 지금 돌아보면, 그건 확신보단 불안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사업의 속도는 빨랐지만, 기반은 약했다. 여러 센터를 동시 운영하다 보니 관리의 공백이 생겼고, 신뢰했던 내부 인력의 이탈과 일부 센터의 경쟁사 전환 등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후 연이어 점포들이 위기에 처하며 선 대표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구성원들에게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성장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걸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진정으로 중요한 건 ‘잘할 수 있는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혼란의 중심에서 그는 사업의 본질을 되묻기 시작했다. 무엇을 위해 시작했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를 말이다. 그 답은 처음부터 있었던 ‘현장’이었다. 수원CC 센터와 투어밴이라는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그는 무리한 확장을 모두 정리하고, 기존 사업에 모든 역량을 몰아넣었다. 다시 처음처럼, 아니 그보다 더 성숙하게, 그는 글로리어스를 정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선 대표는 “많이 배웠습니다. 실패를 겪고 나니, 우리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걸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요”라며 “그래서 성장은 폭이 아니라 깊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으로 증명해 보이고자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함께하는 동료, 극복의 버팀목
선종협 대표의 사업 여정에는 늘 ‘사람’이 중심에 있다. 글로리어스라는 이름 아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단순한 직원이 아닌, 함께 고생하고 성장해 온 ‘동지’였다. 그는 “사실 제가 이 일을 지금까지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일이 힘들어도,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았어요”라고 전했다.
실제로 글로리어스의 핵심 멤버들은 8년 가까이 함께한 베테랑들이다. 월급이 밀릴 때도 있었고, 사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이들에게 선 대표는 언제나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사업을 시작한 것도, 확장한 것도, 그 모든 배경에는 이들과 함께 오래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잘 되고 싶다기보다 오래 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전하는 선 대표다.
그래서일까. 그는 회사가 어려움을 겪던 시절, 자신이 결혼을 위해 모아두었던 자금을 회사 자본금으로 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직원들에게 밀린 급여를 나눠주고, 새출발을 위해 센터를 다시 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경제적으로는 무모했지만, 신뢰를 지키는 데는 정확한 방향이었다. 복지나 급여, 조직의 안정성은 결국 함께 오래 가기 위한 조건임을 잘 알았던 선 대표였고,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걸 사업을 하며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지금도 모든 회식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동료들의 일상과 고민을 귀 기울여 듣는다. 트레이너로서, 대표로서, 그리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선 대표만의 방식이다.
그가 바라는 회사의 미래도 단순하다. 나이 들어서도 서로의 옆자리에 있을 수 있는 근속 연수가 긴 회사,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다. 사람이 힘이 된다는 말. 선 대표에게 그것은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지금껏 회사를 지켜온 가장 현실적인 동력이었다.
ⓒ 주식회사 글로리어스
마음을 움직이는 이름 없는 서포터
글로리어스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선종협 대표는 화려한 시스템도, 고가의 장비도 아닌 ‘진심’을 가장 큰 차별점으로 꼽는다. 그는 “우리는 특별한 마케팅 능력을 갖춘 기업도 아니고, 유명한 브랜드도 아니에요. 하지만 한 번 인연을 맺은 선수와는 오래 갑니다. 진정으로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생각해서 움직였기 때문이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인다.
이어 트레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술’보다 ‘태도’라고 강조하는 선 대표는 실제로 팀 내부에서도 실력이나 경력이 아닌 인성과 책임감을 기준으로 채용하고, 선수와의 관계 형성에 탁월한 인재를 우선시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안 되어 있으면 소용이 없고, 이와 반대로 진심을 다해 선수와 소통하는 사람은 실력도 빠르게 성장한다는 믿음에서다.
이에 기반해 글로리어스는 선수들과의 관계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꾸준히 몸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변화에 맞춰 훈련 방식과 컨디셔닝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트레이너 한 명당 관리하는 선수 수를 제한하여 맞춤형 케어가 가능하도록 운영한다. 이는 대형 트레이닝 업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방식이다.
선 대표는 “선수들은 사실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존재입니다. 경기 결과에 따라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받죠. 그래서 저희는 멘탈까지 케어하는 서포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 덕분에 글로리어스는 선수들에게 ‘컨디셔닝 트레이너’가 아닌 ‘마음의 기댈 곳’으로 인식된다. 그 결과 LPGA 소속 선수들과의 협업이 이어졌고, 현재는 미국, 일본 등 해외 투어 일정에도 동행할 만큼 국제적인 확장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선 대표는 여전히 브랜드를 키우기보다는, 사람 중심의 트레이닝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확장보다 중요한 건 본질이에요. 우리가 잘하는 것을, 우리가 믿는 방식으로 계속하는 것. 그것 바로 글로리어스 자체입니다.”
그의 말처럼, 글로리어스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 진심이야말로,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 주식회사 글로리어스
선종협 대표가 만들어 가고 있는 족적은 수많은 실패와 고민, 그리고 사람을 향한 책임감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확장을 꿈꾸기보다 중심을 지키는 법을 배웠고, 화려한 외형보다 묵직한 신뢰를 택했다. 글로리어스는 그런 그의 태도에서 자라난 브랜드다. ‘결국 오래 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믿어요’라고 말하는 선 대표의 이 한마디는 그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선택을 설명한다. 앞으로도 그는 더 많은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더 깊은 신뢰를 설계하며 사람 중심의 트레이닝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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