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반크 단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서커스단 코끼리 이야기가 있다. 성인 남자 10명을 거뜬히 들어 올릴 만큼 대단한 괴력의 코끼리가 유독 서커스단에 있으면 조그만 말뚝에 밧줄로 묶여 머리털 깎인 삼손처럼 아무런 힘도 못 쓰고 갇혀 있다. 그 이유는 코끼리가 아주 어렸을 때 서커스단의 조련사가 코끼리 발을 밧줄에 묶어 말뚝에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린 코끼리는 말뚝에 묶인 밧줄을 끊어 버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을 쏟아 보지만 결국 힘에 부쳐 포기하고 만다. 이는 코끼리의 삶에 불가능과 실패라는 참담한 유년의 역사로 기록된다. 코끼리는 강력한 힘을 가진 어른이 되어서도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며 습관적으로 포기하고 만다.
미주와 유럽의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국 역사는 마치 서커스단의 코끼리와 같다. 약 115년 전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침략하면서 식민 지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막고 식민 지배에 대한 국제적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한국 역사를 불가능과 실패의 역사로 연출 했다. 예를 들어 일제는 한국 역사의 시작은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서술해 한국 역사는 곧 실패의 역사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일제는 한국의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식민 지배를 했다는 조작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후 전 세계 청소년들이 보는 세계사 교과서에 반영했다.
외교관도 아닌 평범한 청년이었던 필자는 우연히 대학교 4학년 때 미국의 청년들과 온라인상에서 교류하던 중, 한국 역사가 국제사회에 잘못 소개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1999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를 설립했다. 필자는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의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전 세계 교과서, 세계지도, 백과사전, 웹사이트에 서술된 한국에 대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았다. 또 한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반크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한국 정부에서 임명한 외교관이나 대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사명감과 활동으로 디지털 외교관이자 민간 한국 홍보대사로서 세계 곳곳에 한국을 바로 알렸다. 이를 통해 세계 유명 교과서와 정부 기관에 잘못된 한국의 역사를 바꾸고, 한국의 찬란한 문화를 새롭게 알리는 성과를 거뒀다. 대표적으로 캐나다의 정부 기관 사이트에 '한국의 역사는 외세의 잇따른 정복으로 점철됐다. 이 나라는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러일전쟁이 끝난 뒤인 1910년부터는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내용을 '한국은 오래되고 유구한 역사가 있으며, 아름다운 영토를 가진 동쪽 끝의 나라'라고 고쳤다.
반크가 최근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와 함께 추진하는 전 세계 아프리카 바로 알리기 캠페인이다. 한국을 세계에 알린 반크가 왜 아프리카를 세계에 바로 알리는 것일까. 아프리카에서 반크의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가 외국 교과서에 실패의 역사로 서술되었듯, 아프리카 역사 또한 외국 교과서에 '문제의 대륙', '원시 부족',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주체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실패의 국가'로 서술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 곳곳에 한국을 바로 알리기 위해 활동한 한국 청소년과 청년들이 유사한 활동으로 아프리카를 세계에 바로 알리는 아프리카 홍보대사로 활동할 수 있는 경력이 주어진 셈이다.
아프리카 반투어로 '우분투'란 말이 있다. '우분투'는 아프리카 전통 철학이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상징한다. 반크는 이번 아프리카 바로 알리기 프로젝트를 '우리가 바로 우분투 홍보대사'로 명명했다. 이는 한국 청년들이 식민지, 가난, 역사 왜곡 등 한국과 유사한 역사 경험을 지닌 아프리카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바탕으로 우분투 정신을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비롯했다. 우리가 바로 우분투 홍보대사의 활동은 한국처럼 전 세계 교과서에 잘못 소개된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고 올바른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려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를 세계 전역에 바로 알리기 위한 우분투 홍보대사 활동에서, 반크가 첫 분석 대상으로 삼은 교과서는 어느 나라에서 발행된 것일까. 무엇보다 이 나라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 2억명이 넘는 외국인으로 구성된 팬층을 구성할 만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문화 대국이다. 심지어 이 나라는 1950년대에 아프리카 가나보다 더 가난한 나라였다. 한때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받는 가난한 나라였지만, 이제는 원조를 제공하는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에는 전설(?)로 불리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나라가 어딜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왜 반크는 우분투 홍보대사의 첫 활동무대로 한국을 결정한 것일까. 바로 한국의 교과서가 전 세계 어떤 나라의 교과서보다 아프리카에 대해 편견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크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 11개 출판사 중 5개 출판사(동아출판, 금성출판사, 미래엔, 천재교육, 아이스크림미디어)의 교과서를 선정해 아프리카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세 가지 주요 문제점을 발견했다.
첫 번째 문제는 아프리카를 '빈곤, 기아, 내전'의 고정된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아프리카는 한국의 원조 및 봉사 활동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자립적인 발전이 아닌 수혜자로서의 이미지에 치우쳐 있다. 이는 아프리카를 '문제의 대륙'으로 규정짓고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두 번째 문제는 아프리카의 '다양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으로 54개국이 다양한 문화, 인종, 기후 속에 공존하는 다층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아프리카를 단일 국가처럼 단순화한다. 사막, 사파리, 원시 부족 등의 전형적인 이미지로만 그려내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의 다채로운 문화와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대륙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초래할 수 있다.
세 번째 문제는 한국과 아프리카의 교류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가까운 나라들' 단원에서는 아시아, 미국, 유럽과의 관계는 서술됐지만, 아프리카는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프리카를 한국과 무관한 '원조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반크 박지은 청년연구원은 "아프리카에도 빈곤과 내전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면서 "하지만 현재 교과서의 서술 방식이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아프리카의 빠른 성장과 문화·예술·과학기술 분야의 역동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오랜 시간 세계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로 인해 상처받아온 한국인이라면, 아프리카인을 향한 동일한 편견과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정부는 2025년부터 매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공적개발원조(ODA)로 아프리카에 지원할 예정이다. 2030년까지 지원 규모를 약 100억달러(13조9천860억원)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프리카를 향해 매년 1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지원해 아프리카를 돕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국내 교과서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전 세계 어느 나라 교과서보다 먼저,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 속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과 편견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자. 이제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우분투 홍보대사로 미주와 유럽 등 세계 곳곳의 교과서 속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는 데 앞장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청소년들이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편견을 바로잡는데 주인공이 되도록 지원하자. 이런 활동을 하는 모든 한국인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분투 홍보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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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태 단장
현 반크 단장, 재외동포청 정책자문위원, 재외동포정책실무위원, 직지 홍보대사 활동 중, 외교부·대검찰청 정책자문위원, 청와대 청년위원회 위원,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KOICA 홍보전문위원, 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홍보대사, 서울시 홍보대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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