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해방일지③] 위협·변화·접촉도 느낀다...놀라운 진화 주체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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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해방일지③] 위협·변화·접촉도 느낀다...놀라운 진화 주체 ‘식물’

투데이신문 2025-05-14 23:15:00 신고

3줄요약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권을 바탕으로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모든 인간이 천부적인 존엄과 권리를 가지며 이를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은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졌다. 이후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넘어 동물 또한 불필요한 고통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윤리적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떨까. 인류는 아직까지 식물이 단순한 자원 이상이며 고유한 존엄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식물의 생명을 경시하고 도구적 관점에서 이들을 착취한 결과 인간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훼손이라는 결과와 직면하게 됐다. 식물이 소비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이라는 관점이 이제는 필요한 때다.

본보는 ‘식물해방일지’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개념인 식물 존엄성을 조명하고 식물을 도구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식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2023년 국내 최초로 발표된 식물존엄성 선언을 바탕으로 식물에 대한 새로운 윤리적 접근과 그 실천적 의미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만들고 정책적 전환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진제공=AI 제작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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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저는 ‘지능’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주목하곤 합니다. ‘intelligence’는 라틴어 ‘inter-legere’, 즉 ‘여러 가지 중에서 선택하다’에서 온 말이죠. 그런 기준에 따르면, 선택지를 평가하고  행동하는 모든 생명체는 지능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물은 늘 그런 선택을 합니다.”_호주 서던크로스대 식물인지연구학 모니카 가글리아노 교수

‘식물인간’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가 식물을 얼마나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존재로 인식해왔는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대중이 알고 있는 식물의 이미지는 사실일까. 과연 식물은 식물인간처럼 호흡할 뿐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까. 

약 5억년 전 물속에서 나온 태초의 생명체는 두 가지 삶의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이동생활을 하는 동물로 살아갈 것인가, 혹은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로 살아갈 것인가. 전자를 선택한 생명체들은 식물로, 후자를 선택한 생명체는 동물로 진화했다.

인간이 이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동물의 삶을 택할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식물의 삶은 지나치게 단조롭기 때문이다. 식물은 그 뿌리로 한 군데에 정착해 움직이지 않으며 동물과 달리 뇌가 없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지루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식물은 지구상 현존하는 생물체 중 가장 많은 바이오매스(생물의 총량)를 차지한 ‘성공한’ 생명체다. 뇌가 없기 때문에 사고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다리가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의 개체 수가 동물과 인간을 상회한 것이다.

인간은 식물을 방식을 열등하다고 여기며 도구로서 취급하고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해 왔다. 하지만 식물의 진화는 증식에 유리하도록 이뤄졌을 뿐이며, 식물은 다른 생명체처럼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생존, 성장, 번식한다는 점에서 그 생명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국내 최초로 식물 생명 존엄 논의를 제기한 ‘식물 존엄성 선언문’의 제1장 식물의 의미와 가치에 따르면 식물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그 자체의 좋음을 지향하는 진화적 유기체로서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다. 또 식물은 생태적, 윤리적, 미적인 가치를 지니는 존재로, 인간은 식물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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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 견디는 식물의 힘...진화로 이뤄낸 ‘모듈화’

식물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느린 속도로 움직이며 살아가기 때문에 하위 생물로 오인받곤 하지만 그들은 지능적이고 정교한 방식으로 지능적으로 진화해 왔다. 식물은 뇌가 없이도 감각하고 이동 없이도 방어하며 통제 센터 없이 전신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자극에 대응한다. 식물이야말로 지구 생태계의 주인으로서 인간보다 훨씬 오래, 넓게 생존해 온 존재이다.

언뜻 보기에 식물에게는 뇌도, 뇌로 만들어지는 감각도, 심장과 호흡기관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식물의 기관은 그들의 전신에 분산된 채 온전히 기능하고 있다. 그들의 진화 방식인 ‘모듈화’는 식물이 성공한 생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뇌와 다리, 심장, 눈코입을 비롯해 인간에게 존재하는 모든 기관들이 전신에 모듈화된 채로 퍼져 있기 때문에 식물들은 이 같은 생존력을 지닐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식물이 개체에 붙어 있는 모든 잎으로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고 광합성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만약 식물에게 뇌와 호흡 기관과 같은 특정 기관이 존재한다면 움직이지 못하도록 진화한 식물은 포식자에게 공격당할 시 동물이 그렇듯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될 것이다. 특정 식물의 일부를 잘라 땅에 심었을 때 그들이 죽지 않고 새로운 하나의 개체로 자란다는 사실 또한 식물의 모듈화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국제식물신경생물학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의 스테파노 만쿠소 교수는 자신의 저서 <식물혁명> (2019)에서 “식물은 모듈 및 협력, 분산적인 구조를 통해 재앙 같은 포식을 완벽하게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식물존엄성 선언도 이 같은 진화론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식물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규정하는 제2장 식물 존중의 기본 원칙은 “인간은 식물을 외부 환경을 감각하고 이를 생존에 유리하도록 활용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존중해야 한다(존중의 원칙)”고 강조했다. 

이 같은 원칙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식물을 열등한 존재로 여겨온 인간중심적 사고에 대한 반성과 식물의 생존 전략과 특성을 과학적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실제 여러 생태학 전문가들은 각종 연구와 학설을 통해 인류가 식물이 수동적이고 정적인 생명체 이상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생명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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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없는 식물...인간보다 예리하게 감각하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감각은 눈, 귀, 피부와 같은 감각기관이 자극을 받아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가 이를 판단하면서 감각으로 인식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반면 식물에는 이 같은 과정을 수행할 뇌와 신경이 없다. 이 때문에 식물에게는 감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식물이 동물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근거인 무감각·무인지·무지능은 과학적으로 입증될 필요가 있다. 특히 감각의 측면에서 식물이 인간과 동물에 비해 자극에 기민하지 못하다는 관점은 재고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진화생물학자 다윈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식물 중 하나”라고 평가한 ‘파리지옥’은 이 같은 통념을 깨는 대표적 사례다. 벌레를 잡아먹으며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육식식물로 알려진 파리지옥은 잎 안쪽에 있는 ‘감각 털’을 통해 외부 자극을 포착한다. 이들은 곤충이 최소 두 가닥의 털이 20초 이내에 한꺼번에 건드려질 경우 빠르게 입을 닫는 방식으로 사냥에 나선다.

놀라운 사실은 파리지옥이 받아들이는 자극이 실제 곤충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단순한 낙엽이나 빗방울 같은 무생물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파리지옥은 실제 먹잇감일 경우 입을 다물고 그렇지 않은 접촉에는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입을 여닫는 에너지를 아낀다. 이는 식물이 자극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 ‘판단’까지 하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뇌나 신경이 없는 식물들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전기신호’ 덕분이다. 누군가 식물을 건드리거나 상처를 입히면 식물 세포 안에 있는 칼슘이온(Ca2+)의 농도가 높아지는데, 이 칼슘이온은 전기를 띠고 있어 자극이 생겼다는 신호를 주변 세포로 전달한다. 이렇게 식물은 자극에 반응하고 그 정보를 몸 전체에 퍼뜨리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2007년 미국 오크우드대학교의 알렉산더 볼코프와 동료들은 전기 자극이 파리지옥의 잎을 닫게 하는 원인임을 증명했다. 이들은 파리지옥의 잎에 가느다란 전극을 꽂아 전류를 흘려보냈고 파리지옥은 14마이크로쿨롱(µC)의 전하가 흐를 때 잎을 닫았다. 이는 풍선 두 개를 서로 문지를 때 생기는 정전기보다 조금 더 큰 전하량으로, 파리지옥은 이 미세한 전하를 통해 먹잇감을 감지하고 재빠르게 채내는 사냥꾼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식물이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동물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여기지만, 이같이 여러 연구 결과들은 식물은 동물이 지닌 감각기관 없이도 왕성한 생명활동을 펼치는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생명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br>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식물, 생각하지 않아도 ‘학습하는’ 존재들

식물은 ‘식물인간’처럼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뇌 손상으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식물인간과는 달리 식물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판단을 내리며 반복되는 자극 속에서 어떤 것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구분해낸다.

이 밖에도 식물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학습하고 그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감각적 생명체다. 이 같은 관점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은 우리가 식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2013년 국제 식물신경생물학 연구소에서 식물생리학자 스테파노 만쿠소는 화분에 담긴 미모사 모종을 약 10cm 높이에서 반복적으로 추락시키며 미모사 푸디카(이하 미모사)가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하고 “지능이 단 하나의 기관에서 실행한 작업의 산물이 아니며 뇌가 있든 없든 지능은 생명과 함께 타고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낸 바 있다.

미모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잎을 움직이는 식물 중 하나로, 외부 자극이 가해질 시 자신의 잎사귀를 빠르게 오므리고 줄기를 아래로 늘어뜨린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가 집중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미모사가 반복적인 자극에 노출된 후 자극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잎을 닫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자극 이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이미 아는 자극과 그렇지 않은 자극을 미모사가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미모사는 7~8회의 반복되는 자극 이후 이어지는 추락에는 잎을 닫지 않았다. 스테파노 교수는 미모사가 잎을 오므리지 않는 이유가 반복되는 자극에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인지,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극의 유형을 바꿔 봤다.

화분을 위아래가 아닌 가로 방향으로 흔들기 시작하자 미모사는 스테파노 교수의 물음에 답하듯 다시금 잎을 닫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이어 해당 실험 개체들을 방치해 뒀다가 이후 같은 자극을 줬을 때 평균적으로 40일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실험 결과도 도출해 냈다. 즉 이들은 40일 이상 자신에게 가해지는 자극의 유형을 ‘기억’해 냈다는 것이다.

스테파노 만쿠소 교수는 이로써 “식물이 어떤 사건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고 위험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건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식물이 과거의 경험을 기억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분석했다.

식물이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반응하는 역동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 때 인간은 그들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소중한 생명을 지닌 동반자로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다시 쓰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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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이도 반응한다...식물만의 위협 대응 매뉴얼

동물이 도덕적 주체로 인정받는 기준 중 하나로는 쾌고감수능력(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꼽힌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을 제외하고 쾌고감수능력이 없는 존재를 흔히 ‘무감각하고 도구적인 존재’로 분류해 왔다. 식물 역시 이 같은 기준 아래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서 배제돼 왔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연구 결과는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더라도 생명에 위협이 되는 자극을 감지하고 이에 대응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신체는 위협에 반응하고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하기 위해 고통에 즉각 운동하도록 진화해 왔다. 반면 식물은 빠른 이동이 불가하게끔 진화했기 때문에 뇌와 통각수용체를 없애고 위협에 반응하는 식물만의 특별한 생존법을 터득했다.

2013년 스위스 로잔대의 테드 파머 교수는 식물이 천적인 곤충을 감지하는 데 인간의 신경과 유사한 작용 원리를 이용한다는 내용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파머 교수의 연구팀은 애기장대(작은 개화식물의 일종)의 잎이 외압에 의해 손상될 경우 상처 입은 잎으로부터 전류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발생한 전류는 잎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다른 잎으로 전파돼 건강한 잎들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 방어호르몬인 ‘재스몬산’(식물 병원균의 일종·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발생하는 물질)을 분비했다. 이때 잎에서 잎으로 전해진 신호는 전기신호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경에 존재하는 것과 유사한 단백질들이 신호 전파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나 학계의 놀라움을 샀다.

이 밖에도 GLV(Green Leaf Volatiles·녹색잎 휘발성 물질)는 식물들의 대표적인 생존법 중 하나다. 전정을 하거나 잔디를 깎는 근방을 지나갈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풀냄새라고 느끼게 되는 상쾌한 향이 해당 성분으로부터 발생한다. 녹색잎 휘발성 물질은 상처가 생긴 식물의 세포막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즉 해당 물질은 식물이 흘리는 혈액과 다름없는 것이다.

녹색잎 휘발성 물질은 병원균의 투입을 방지하는 동시에 초식 곤충의 소화를 방해하고 육식 곤충을 불러들인다. 식물들은 해당 물질을 통해 주변 식물들에게 자신이 초식 곤충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서로 다른 종의 식물도 이를 위험 신호로서 감지할 수 있다. 해당 위험 신호를 감지한 다른 식물은 위험 요소가 자신에게 올 경우를 대비해 미리 곤충의 소화를 방해하는 녹색잎 휘발성 물질을 만든다.

인간은 감각신경세포가 특정 유형의 자극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뇌로 전달하면서 풍부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식물은 동물처럼 고통을 경험하지는 않더라도 생존을 위협하는 자극에 체계적이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고통 유사 반응’을 보인다.

즉 식물은 접촉에 반응하지만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오류나 잘못된 주관으로부터 식물들은 자유롭다. 식물은 포식자인 동물들에 비해 느린 움직임을 정교한 감각과 모듈화로 극복함으로써 외부의 위협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주변 환경에 완벽히 적응하는 고차원적 진화를 거쳐온 것이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br>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식물, ‘지능’에 대한 새 지평을 열다

약 5억년 전 물 밖으로 첫 발을 내딛은 생명이 식물의 길을 택했다면, 그것은 열등한 존재로 남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존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식물은 어떤 공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몸 전체에 생존 기능을 분산시켰다. 이들은 뇌와 심장이 따로 없기에 특정 기관 한 군데에 의존하지 않고 전신의 각 기관들이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유동적으로 살아간다.

식물 인지 연구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호주 서던크로스대 모니카 가글리아노 교수는 식물을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관점에 대해 “생태계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라면서 “식물은 수분 매개자를 유인하고 이웃 식물에게 위협을 경고하며 주변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절한다. 그들을 수동적으로 여기는 태도는 식물을 단순 자원으로만 보게 만들고 생태계 동반자로서 그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세상을 인식한다. 감각기관이 따로 있지 않지만 식물은 접촉에 반응하고 과거를 기억하며 경험을 학습하는 방식으로 주변과 풍부한 관계를 맺어나간다.

식물이 감각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식물은 인간과는 다른 방식일지라도 생존의 위협을 감지하고 대응하며 위협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식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생태학 전문가들은 그들의 ‘느림’이 무지나 열등의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니카 가글리아노 교수는 “우리는 흔히 움직이는 속도가 빠를수록 더 진화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인간중심주의적인 시각”이라며 “식물은 고유의 시간 감각을 따른다. 식물의 느린 속도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유기체 전체의 협응을 가능하게 하며 반응이 과도해지는 일을 방지한다. 결국 수백 년을 살아가는 식물은 우리에게 ‘신중하고 지속가능한 행동’이 단순한 속도보다 우월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식물의 감각, 지능, 존엄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많은 책과 다큐멘터리들이 그에 대한 실험적 증거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식물 지능’은 실제 현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학자이자 소통자로서 우리의 역할은 바로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물 지능의 경이로움을 설명하고, 보이지 않는 식물의 삶을 사람들에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이 식물의 생명 활동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절차이다. 식물은 느린 움직임과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감 때문에 쉽게 간과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생태계의 존속과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생동하는 생명체로서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할 때 공존의 첫 단계는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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