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김소현 기자] “그림은 그동안 몰랐던 ‘진짜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일은 나를 단단하게 해주고, 그림은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이제야 나를 조금 알 것 같다.”
지난 13일 광운대에서 만난 윤지선 홍보팀장은 일과 예술을 병행하는 비결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20년 차 홍보 전문가 윤지선 홍보팀장의 하루는 남들과 다르게 흘러간다. 낮에는 홍보팀장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기획하고, 퇴근 후에는 정리된 감정을 그림으로 옮긴다. 고뇌의 과정과 스스로 내린 결론은 고스란히 작품으로 완성됐다.
윤 팀장은 “살면서 여러 이벤트를 겪었지만, 전시를 준비하는 지금이 가장 떨린다”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퇴근 후 붓을 잡는 반복된 하루하루가 모여 3년이 지난 지금, 전시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둔 그에게 그림이란 어떠한 의미인지 들어봤다.
- 직접 그린 그림으로 오는 21일부터 전시회를 연다.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시는 ‘나는 당신에게 찬성이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역할 속에서 나 자신을 밀어붙이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 시간이 있었다. 그 안에서 문득 이 말을 건네고 싶어져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
- 홍보팀장인 동시에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특이한 이력이다.
“고1 때부터 입시 미술을 했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홍보 일에 관심이 생겨 복수전공을 하고 대학원도 홍보 쪽으로 가게 됐다. 그림 자체를 그리지 않은지는 20년이 넘었는데, 붓을 잡으니 다시 감이 돌아오는 게 신기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저의 첫 그림 스승인 김용일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고1 때 처음 붓을 잡고 그림을 배우던 시절 김용일 선생님은 저의 첫 스승이셨다. 이후 홍보 일을 하며 지내다 업무에 지쳐 힘들던 시절 선생님과 다시 연이 닿게 됐다. 고민거리를 말씀드리니 다시 그림을 그려보라는 조언을 해주셨고,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그림을 다시 시작한 뒤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모든 일을 계획대로 완수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평생 홍보 업무를 하며 남을 돋보이는 일에 집중했지만, 정작 스스로 잘했다고 지지하며 챙겨준 적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스스로 흠을 찾으려 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유화 작업을 할 때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롭게 그림을 덮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캔버스 안에서는 마음대로 헤맬 수 있었다. 그런 자유로움이 좋았다.
처음에는 나의 일이 작품 활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림에 집중하고 싶어도 업무를 마치고 올 때면 시간을 뺏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홍보 일을 하며 얻은 아이디어를 그림에 적용하고, 평생 해온 홍보 일이 내 그림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되면서 시너지가 생기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모두 유기적인 것들이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가고 양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때부터는 마음이 더 편해졌다. 이젠 일과 작품, 어느 하나도 그만둔다면 발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
- 이번에 준비한 전시의 주제인 ‘나는 당신에게 찬성이다’는 어떠한 의미인지 궁금하다.
“삶에는 말로 해명되지 않는 구간이 존재한다. 그저 버텼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날이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처도 있다. 그런 날을 통해 언젠가부터 ‘이해’보다 ‘찬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찬성은 누군가의 존재를 굳이 고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언이다. 이 문장을 그림으로 옮기고 싶었고, 명확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여백을 남기는 시각적 언어로 풀어보고 싶었다.”
- 전시가 크게 두 개의 연작 시리즈로 구성된다. 작품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린다.
“두 개의 시리즈 중 ‘스마일 미러볼’ 시리즈는 서로 다른 시대를 거친 인물들을 웃는 얼굴로 표현한 작품이다. 체게바라, 프리다 칼로, 브루노 마스 등 각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들이 미소를 띠도록 그렸다. 스토리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마음이 가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해 작업을 이어가게 됐다. 체게바라, 조커 등은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지만 그들의 삶을 따라 가면 고통 섞인 지점도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편치 않은 삶이지만,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그럼에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디자인적인 요소를 주고 싶어 미러볼 형태로 표현해 돋보이면서도 환한 느낌을 더했다. 겹침과 반사가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 다양한 존재가 각자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스노우볼’ 시리즈는 스노우볼 속 눈이 차분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힐링을 느껴 그리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스노우볼 안에 명품 등 속세적인 요소를 그려 넣었다. 그러다 물질적인 행복에 한정돼 있다는 반성을 거쳐 지금의 평화로운 이미지가 완성됐다. 스노우볼 안에는 기도하는 천사 석고상과 묵주 등이 들어 있다. 화려한 것들, 갖고 싶었던 물건들 사이에 천사를 앉혀두고 반짝이면서도 불완전한 나의 마음을 마주 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욕망도, 불안도, 평화도 모두 나를 이루는 감정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마음은 ‘나는 찬성이다’라는 전시 주제로도 이어진다. 찬성은 타인을 향한 말이지만, 실은 내게 돌아오는 말이기도 하다.”
- ‘sunthing_art’라는 이름의 창작 브랜드도 전시 때 선보일 예정이다.
“sunthing_art는 빛을 뜻하는 ‘Sun’과 무언가인 ‘Something’을 결합한 단어다. 따뜻하고 진심 어린 작업을 계속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홍보 일을 계속해 오면서 이제는 나 자신을 브랜드화하고 감정과 세계관을 콘텐츠로 확장해 나가는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작품이 조금 더 쌓이면 사이트도 제작하고 굿즈도 기획해 제작할 예정이다. 그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소로 구성해 일상에서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품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브랜딩을 선포하는 기간이 될 것 같다. 다음 전시부터는 굿즈도 선보일 계획이다.”
-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느꼈으면 좋겠는지.
“‘나 괜찮구나’ ‘이대로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기를 바라고, 나아가 이러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도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편하게 전시에 들러 기분 좋게 충전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앞으로 어떠한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현재 진행 중인 시리즈도 계속 이어가고 싶고, 소소한 인물들도 그려보고 싶다. 지금은 모두가 아는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림들이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확장되기를 바란다. 자화상을 그릴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얼굴을 스마일 미러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걸 스승인 김용일 선생님을 보며 깨닫는다. 진심이 담긴 그림이 좋은 그림이고, 그러려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선생님께서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행동과 삶의 궤적을 통해 이를 알려주셨다. 중년의 나이에도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스스로와 싸우며 나를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홍보 일을 하며 나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 고민했다면, 그림은 나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림은 치열한 과정이지만, 생각을 작품에 담고 완성작을 보며 치유되는 감정을 느낀다. 앞으로도 ‘잘 그리는 그림’보다 ‘지금의 나다운 장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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