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서경선 기자] [편집자 주] 폴리뉴스는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 아젠다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특집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번 시리즈는 정치 구조 개편과 권력 분산, 국민 통합 등 정치적 쟁점은 물론, 경제 성장 전략과 민생 현안, 산업·노동·복지 등 경제 분야까지 폭넓게 조명한다. 격변의 정국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을 맞아 각 후보와 정당의 정책·공약, 핵심 쟁점, 유권자 선택의 기준을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분석해 독자 여러분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슈로 떠오른 선거제도 개혁
21대 대통령 선거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정권교체 경쟁을 넘어 ‘정치 시스템’ 자체를 바꾸자는 흐름으로 확산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거제도 개혁’이 있다.
지난 40년간 한국 정치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구조 아래 지역주의, 양당 독점, 사표(死票) 양산, 위성정당 출현 등 다양한 문제를 반복해 왔다. 2020년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무력화되며 국민적 실망을 키웠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정치 파행 사태를 거치며 국민은 “정치가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인식 아래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정치 리셋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에 반영되는가”에 있다. 최근에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2∼5명의 의원을 선출해 다양한 정치세력의 진입을 쉽게 하고 사표를 줄이자는 방안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주장도 제기된다. 이 제도는 전국을 권역으로 나눠 비례대표를 선출, 지역 대표성과 비례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와 개방명부제(유권자가 비례대표 후보를 직접 선택)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의원수 확대를 두고 비례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국민들이 느끼는 거부감이 충돌하고 있다. 위성정당 출현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처럼 선거제도 개혁은 단순히 선거 방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민의 다양한 표심이 국회에 제대로 반영되고, 사표를 줄이며, 정치의 다양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정치 시스템의 리셋’이다.
이재명 ‘비례성 강화 공감’, 김문수 ‘신중론’, 이준석 ‘양당체제 타파’
이번 대선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후보들의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0대 공약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명시적으로 내세우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원내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결선투표제 도입 등 다당제와 연합정치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을 이루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결선투표제 도입, 의원선거 시 비례성 확대강화, 원내교섭단체 기준 완화 등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선 공식 공약이 없으며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라는 원론적 견해에 그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중대선거구제, 병립형 비례대표제 복귀 등 보수적 개편안에 무게를 두는 목소리가 있다. 한 당 관계자는 “선거제도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의원정수 확대 등 국민적 거부감이 큰 방안에는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이번 대선을 “정치의 판을 바꾸는 선거”로 규정한다. “보수정치는 고쳐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바꿔 써야 하는 상태”라며, 기득권 양당 체제의 한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 후보는 1호 공약에서 ‘대통령 힘 빼고 일 잘하는 정부 만들기’로 대통령 권한 분산, 부처 통폐합, 3부총리제 도입 등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양당 독점구조 타파, 다당제 실현, 표의 가치 회복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한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유일한 진보 후보”임을 자임하며 비례대표 확대, 완전연동형 비례대표제, 노동자·소수자 대표성 강화 등 강도 높은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한다. “현행 제도는 소수정당과 사회적 약자의 국회 진출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라며 “비례성 강화가 곧 정치개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권 후보는 “다당제 실현과 사회적 약자 대표성 보장이야말로 진짜 정치개혁”이라고 말한다.
거대 양당 기득권이 선거제도 개혁 발목 잡아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여러 현실적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은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에는 원론적으로 공감하지만 실제로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선거제 논의 과정에서 양당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제도 변화에는 미온적이었다. 개혁 논의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때도 잦았다. 국회 정개특위 활동에서도 양당 소속 의원 다수가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는 등 기존 제도의 이점을 누려온 행태가 반복됐다. 이 같은 태도는 선거제도 개혁이 실질적 진전 없이 표류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과 구체적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비례대표 확대나 의원정수 증원 등 핵심 쟁점에 대해 국민 여론은 부정적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표성과 비례성 강화라는 원칙부터 논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하지만, 실제 국회 논의는 정당 유불리와 개별 의원의 당선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따라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총체적 개혁 대신 단순한 제도 선택의 문제로 축소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20년 총선에서 양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무력화한 전례는 제도 개혁이 꼼수와 편법으로 쉽게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거대 정당이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당투표를 몰아주는 전략은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어렵게 하고 선거제 개혁의 실질적 효과를 약화했다. 이러한 경험은 “제도만 바꿔서는 근본적 정치개혁이 어렵다”라는 회의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각 정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선거용 구호로만 활용하고 실제 추진에는 소극적일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정치권이 정략적 시야에 갇혀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만 따지면 선거제 개혁 논의 역시 정쟁에 그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2019년 선거제 개편 당시에도 시민사회 의견 수렴 없이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준연동형제 도입이 이뤄졌고 결국 위성정당 꼼수로 취지가 좌절된 바 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정치의 판’이 바뀔지 관심
전문가들은 “선거제도 개혁이 성공하려면 정당의 유불리를 넘어 대표성과 비례성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시민사회와 유권자의 적극적 참여, 제도적 허점을 막을 실질적 대책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대선 이후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사회와 국민 여론이 지속적으로 압박한다면 정치권의 실질적 변화 가능성도 커질 전망이다.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의를 반영한 진정한 개혁 논의에 나설지 주목되는 가운데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감시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21대 대선이 ‘정치의 판’을 바꿀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또 한 번의 개혁 실패로 남을지 국민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