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인생을 발견하는 레슨을 말하다
ⓒ ㈜에이지슈터
- 골프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 인생의 파트너가 되고픈 지도자의 40년 철학
스코어보다 중요한 것은 리듬, 샷보다 앞선 것은 태도. 임진한 프로가 지난 40여 년간 지켜온 골프 철학은 기술 지도가 아닌, 사람을 이해하고 감각을 깨우는 일에 닿아 있다. 일본과 한국 무대에서 통산 8승의 커리어를 쌓은 그는, 선수로서의 전성기 이후에도 지도자로서의 전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골프를 ‘삶의 축소판’이라 말하며, 수많은 아마추어와 리더들에게 골프 너머의 가치를 전해온 사람. 그는 오늘도 ‘툭 놓아야 풀린다’라는 단 한마디로 인생과 골프의 본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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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서 교습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선수로서 제법 오래 활동했고, 일본과 한국 투어를 오가며 메이저 대회에서도 몇 차례 우승을 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뛰던 시절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운동을 통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들더군요. 단순히 성적을 쌓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골프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때부터 지도자의 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레슨 시스템이 얼마나 체계적인지 가까이서 본 경험이 있어요. 아마추어도 정식 코치에게 배웠고, 교습가들은 모두 엄격한 과정을 거쳐 자격을 갖췄죠. 그런 문화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직은 그런 기반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고요. ‘그럼 내가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에도 여전히 골프가 좋았고, 그 마음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레슨 초창기에는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셨나요?
“레슨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정답이 없었어요. 선수 경험이 많다고 해서 가르치는 게 쉬운 건 아니더라고요. 처음에는 내가 해온 방식대로, 내가 해본 감각을 그대로 전하려 했죠. 그런데 상대는 다 달랐어요.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고, 똑같이 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아, 이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리듬도 달라요. 그걸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만 가르치려고 하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그 사람이 가진 흐름과 감각을 살리는 쪽으로 접근해요. 무조건 고치는 게 아니라, 좋은 건 살려주고 불필요한 걸 덜어내는 방식으로요. 그러면서 저도 많이 배웠고,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레슨을 하며 쌓아온 철학은 무엇인가요?
“저는 골프를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느낌’이고, 그 느낌을 끌어내기 위한 준비예요. 그래서 항상 이야기하는 게 ‘툭 놓아야 풀린다’는 말이에요. 많은 분들이 골프를 할 때 너무 힘을 줘요. 스코어에 매달리고, 동반자와 비교하면서 조급해하죠. 하지만 골프는 내려놓는 순간 풀리는 운동이에요. 자기만의 템포를 찾고, 감각을 믿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하거든요. 레슨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못 치세요?’라고 묻는 게 아니라, ‘뭘 느끼셨어요?’라고 물어야 해요. 스윙 궤도를 바꾸는 것보다, 골퍼 스스로 자신의 패턴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게 훨씬 중요하죠. 좋은 레슨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감각을 꺼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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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제자나 레슨 사례가 있을까요?
“사실 ‘누가 제일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면 단정 지어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어요. 누구든지, 골프를 배우겠다고 저를 찾아온 분이라면 저는 그분이 잘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분은 제가 아무리 가르쳐도 처음엔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세요. 왜냐하면 자기 방식과 너무 다르니까요. 그럴 때는 제가 먼저 인내해야 합니다. 세월이 가면서 깨달았죠. ‘이 사람이 안 되니까 내게 배우러 온 거다. 내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라는 걸요. 사회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도, 골프를 배우는 순간엔 초등학생과 마찬가지예요. 그런 분들을 이해하고 끝까지 함께 가는 것, 그게 제가 지금까지 레슨을 해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골프는 잘 치는 사람만의 운동이 아닙니다. 자꾸 실력으로 구분하려고 하지만, 저는 골프가 ‘자기와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오늘 공이 안 맞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스코어를 냈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죠. 중요한 건,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즐기세요’라고 말합니다. 게임에 지더라도, 오늘 동반자와 웃고 나눴던 대화가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요. 스코어도 남지만, 진정으로 가슴에 남는 건 그날의 기분과 감정이에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골프가 주는 여유와 감각을 천천히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골프를 인생과 연결해 레슨을 하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요?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는 골프를 인생과 연결해 설명하면 훨씬 더 빨리 받아들이세요. 예를 들어 스윙 하나를 설명할 때도 단순히 팔을 이렇게 움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인생의 굴곡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리는 거죠. 공 하나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흐름을 이해하고 느껴보라는 식으로요.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스윙도 자연스러워져요.
사실 저도 예전에는 기술적인 설명에 집중했지만,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상대방의 인생 경험이나 감정, 생각을 읽으려 하죠. 특히 연세 있는 분들일수록 기술보다 공감이 먼저예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 삶 속에서 골프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골프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경험이 되더라고요”
후배 골프 교습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스윙을 가르치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교습가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교육자예요.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제자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레슨장에서 늘 겸손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먼저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요즘은 실력 좋은 젊은 코치들이 많아요. 그런데 인격이 따라오지 않으면 오래가기 어려워요. 선수 때보다 교습가로서의 삶이 훨씬 길 수 있어요.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면,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인품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골프 레슨 문화의 미래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신가요?
“우리나라 골프 인프라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빠르게 성장했지만, 레슨 문화는 아직도 개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요. 교습가들이 각자 활동하다 보니 서로 배우고 교류할 기회가 부족한 게 사실이죠. 저는 앞으로 지도자들이 함께 공부하고, 철학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골프 전문 교육기관, 일종의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체계적인 골프 교육과 인성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공간, 지도자가 되기 위한 기반을 쌓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 말이죠. 실제로 조감도까지 직접 그려보며 구상했는데, 여건이 맞지 않아 잠시 멈춰둔 상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간직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그 꿈을 조금씩 현실로 만들기 위해 후배 코치들을 위한 세미나와 교육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스윙 기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로서 어떤 태도를 갖고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죠. 이제는 골프 실력뿐 아니라, 교육 문화에서도 세계적인 기준을 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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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한 프로님에게 ‘골프’란 어떤 의미인가요?
“골프는 결국 사람입니다. 공을 치는 건 기술이지만, 그걸 즐기고 버티고 나누는 건 사람의 일이에요. 저는 골프를 통해 수많은 인생을 만났고, 그 안에서 저 역시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도 라운딩을 나가면 그날의 스코어보다 ‘오늘 나는 어떤 대화를 했는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골프는 ‘삶을 닮았다’는 말이 있죠? 예측할 수 없고, 매번 다르고, 때로는 말도 안 되게 꼬이지만 결국엔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점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이 골프라는 언어로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임진한 프로에게 골프는 공을 치는 스포츠가 아닌, 사람을 이해하는 언어다. 그는 수많은 라운드와 레슨을 통해 기술이 아닌 감각, 결과가 아닌 태도를 이야기해 왔다. 선수로서 쌓아온 커리어만큼이나, 지도자로서 그의 진심은 깊고 단단하다. “툭 놓아야 풀린다”는 그의 말처럼, 골프를 통해 삶의 긴장을 덜고 여유를 얻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곁에는 늘 ‘임진한’이라는 이름이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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