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김희애, 차승원, 설경구, 문소리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한때 몸담았던 YG엔터테인먼트와 씨제스 스튜디오가 잇따라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에서 손을 떼며 연예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콘텐츠 및 음악 제작 중심으로 사업 재편을 선언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극장 영화 시장의 침체와 맞물린 구조적 위기를 그 배경으로 분석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월 “본업인 음악 사업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배우 매니지먼트 부문을 전격 종료했다. 이에 따라 차승원, 김희애, 유승호, 이성경, 장기용 등 간판급 배우들이 소속사를 떠나 FA 시장에 나섰다.
뒤이어 4월, 씨제스 스튜디오도 설경구, 문소리, 라미란, 류준열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소속된 상황에서 배우 매니지먼트 철수를 선언했다. 대신 드라마, 영화, 음반 등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업계 내에서 흥행력을 갖춘 배우들을 다수 보유한 대형 기획사들이 배우 관리에서 손을 떼는 이례적인 흐름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지속 불가능한 수익 구조’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매니지먼트 업계 관계자는 “주연급 배우들의 수익 배분이 8:2, 심지어 9:1까지 치우치면서 회사 입장에서 수익을 내기가 극히 어려워졌다”며 “작품 수가 줄고 제작 기간은 길어지는 반면, 배우에게 투입되는 비용과 인건비는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극장 영화 시장의 침체가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관객 수가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OTT 중심의 콘텐츠 소비 구조가 자리 잡으며 영화 제작 편수는 줄고, 그나마 제작되는 작품들도 소수의 스타 배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신인을 키우는 데 드는 시간과 자본이 막대하다. 리스크를 줄이려다 보니 결국 이미 인지도를 갖춘 배우들에게만 의존하게 되고, 이는 다시 수익성 악화를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YG와 씨제스의 사례는 단지 개별 기업의 사업 전환이 아니라, 연예 산업 전반이 겪고 있는 변화의 전조로 해석된다. 극장 영화의 부진, OTT의 부상, 수익 배분 구조의 불균형, 신인 육성 시스템 부재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쌓여 매니지먼트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YG와 씨제스는 결국 성장을 멈추고 생존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연예 산업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구조가 흔들릴 때, 새로운 시도가 탄생한다. 스타를 좇기보다 콘텐츠를 만들고, 유명 배우 대신 신인을 발굴하는 쪽으로 산업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 변화가 일시적인 후퇴일지, 산업 전체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은 더 이상 스타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타의 이름값보다 콘텐츠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누가 아닌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는 시간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knewscorp.co.kr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