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올해 한국 정부가 야심차게 제시한 ‘해외건설 500억 달러 수주’ 목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핵심 동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가 예상치 못한 법적 변수에 발목을 잡히며, 글로벌 건설 수주전에서 한국 기업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있다.
13일 과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원전 수출의 상징이자 26조 원 규모의 ‘대어’로 주목받아 온 체코 원전 사업은 당초 지난 5월 7일 체코 프라하에서 공식 계약 서명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국영 전력회사 EDF가 법원에 제기한 소송으로 인해 서명식이 전격 보류되며, 올해 수주 성적에도 비상이 걸렸다.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은 EDF가 제기한 행정소송과 관련해,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계약 절차를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인 ‘팀코리아’와 체코 정부 간의 최종 계약은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이 원전 사업은 체코전력공사(CEZ)가 발주한 프로젝트로, 수도 프라하에서 약 220km 남쪽에 위치한 두코바니 지역에 원전 5·6호기 두 기를 신설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약 180억 달러(한화 약 26조 원) 규모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전기술,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한전연료, 한전KPS 등이 참여하는 ‘팀코리아’는 지난해 7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사실상 수주 확정 분위기까지 연출됐었다.
더 나아가 체코가 차기 사업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테믈린 원전 3·4호기 건설 프로젝트에도 같은 팀이 유력하게 거론되며, ‘연쇄 수주’ 가능성까지 점쳐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 EDF가 절차적 공정성을 문제 삼고 소송전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현지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계약은 좌초 위기에 놓였고, 이에 따라 국내의 올해 수주 목표 달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현재 체코 정부는 해당 계약에 대한 사전 승인을 이미 마친 상태로, 법적 변수가 해소되면 즉시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주 자체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계약 체결 시점이 불확실해지면서 연내 500억 달러 목표 달성에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까지의 누적 수주액은 105억4천만 달러로, 최근 5년 평균(105억7000만 달러)과 유사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132억1000만 달러에는 크게 못 미치는 실적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중동에서의 부진이다. 작년 동기간 98억 달러 이상을 수주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55억9000만 달러 수준으로 무려 43%가량 급감했다. 이는 유가 하락에 따른 발주국들의 재정 압박과, 일부 프로젝트의 연기 또는 취소에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중동 국가들이 ‘탈석유’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한국 건설사들이 강점을 보여왔던 정유 및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 발주가 줄고 있는 것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향후 수소, 암모니아 등 신에너지 분야로의 사업 전환 및 포트폴리오 다각화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해외건설업계 관계자는 “체코 원전 수주는 최종 무산보다는 지연 가능성이 더 크다”며 “계약이 지연될수록 체코 정부도 일정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빠른 결론을 도출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법원의 가처분 해제가 1년 가까이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어, 시간 싸움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편 정부가 설정한 올해 500억 달러 수주 목표는 체코 원전 계약을 전제로 산출된 수치다. 지난해 전체 수주액이 371억 달러였고, 최근 5년 평균도 334억 달러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80억 달러 규모의 체코 수주가 성사돼야만 500억 달러 달성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선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올해 500억 달러 달성은 다소 비관적인 분위기지만, 체코 원전 수주가 내년으로 연기되더라도 연평균 수준인 330억 달러대는 무난할 것”이라며 “다만 기존 수주 중심지였던 중동에서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새로운 시장과 산업 분야로의 확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체코 원전의 변수, 중동 수주의 위축,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올해 한국 건설업계에 복합적인 도전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제는 ‘수주 실적’만이 아니라 중장기 전략 수립과 사업 전환 능력이라는 더 큰 시험대에 올라선 시점이다. 향후 글로벌 건설업계에서 한국 기업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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