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 더봄] 강한 말보다 따뜻한 말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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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더봄] 강한 말보다 따뜻한 말이 통한다

여성경제신문 2025-05-13 10:00:00 신고

최근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갈등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체감하는 사회갈등 수준은 4점 만점에 3.04점으로, 2018년 조사 이래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이 3.52점으로 가장 심각하게 인식되었다.

스트레스 역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다. 서울대학교 사회적 웰빙 연구팀과 한국리서치가 2023년 5월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3%가 최근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답했으며 이 중 32%는 스트레스 수준이 ‘대단히 많다’ 또는 ‘많은 편’이라고 응답해 만성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적 평가도 유사하다. 영국 보험사 윌리엄 러셀이 발표한 2024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았다. 높은 물가, 대기오염, 자살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안전 문제 등이 주요 요인으로 지적됐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다.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같은 갈등을 반복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다.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같은 갈등을 반복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통념의 그림자

현대 한국 사회 전반에 퍼진 갈등과 스트레스는 단순히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을 해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점점 고조되는 사회적 긴장 속에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이들이 대화를 통한 조율보다는 보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이는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통념, 즉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말은 단지 소리를 크게 낸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내포한다. 실제로 집회나 시위처럼 크고 분명한 목소리가 정치적 변화를 이끈 사례들이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 ‘참으면 손해 본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같은 갈등을 반복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결국, 사회 전체의 긴장을 높이고 구성원 간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호적인 시작이 가진 힘

데일 카네기가 말한 “우호적으로 시작하라(Begin in a friendly way)”는 예의나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갈등과 스트레스로 힘들어 우리에게 과연 어떻게 하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보여준다. 

인간은 상대의 논리보다 태도에 더 빨리, 더 강하게 반응한다. 공격적인 말투나 날 선 표정은 내용을 듣기도 전에 방어적 태도를 유발한다. 반대로 부드럽고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상대의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를 여는 열쇠가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반응을 상호성의 법칙(Law of Reciprocity) 또는 상호적 반응 경향(Reciprocal Behavior Tendency)이라고 설명한다. 이 이론은 인간이 타인의 태도나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아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상대가 공격적이거나 거친 언행을 보일 경우, 우리는 방어적으로 반응하거나, 때로는 맞대응하려는 충동을 느끼기 쉽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위협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반대로, 상대가 존중과 따뜻함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우리 역시 방어를 풀고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실제로 대화의 첫인상이나 초반 분위기가 이후 상호작용의 방향을 크게 좌우한다. 첫 몇 마디의 말투나 태도에 따라 관계는 쉽게 긴장으로 흐를 수도 있고, 반대로 신뢰와 이해의 바탕 위에서 건설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말의 내용 이전에 말하는 방식이며 상대의 공격적 태도에 자동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의식적인 대응이 관계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이 된다.

갈등 상황에서의 실제 적용 전략

하지만 실제로 갈등 상황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이 격해지면 우리의 뇌는 상대의 말과 태도를 위협으로 해석하고 자동적으로 방어하거나 반격하려는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뇌 속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생존 본능이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실천 전략을 갖추는 일이다.

첫 번째 전략은 감정의 신호를 인식하고 이름 붙이기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무시당한 것 같아 화가 난다”, “서운하고 속상하다”처럼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강도는 낮아진다. 이는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과잉 반응을 조절하고, 이성과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름 붙이기’는 감정을 통제하는 첫 단계이자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 연습이다. 갈등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짧은 숨 고르기를 통해 상황을 다시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차분히 나누고 싶어요”,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말씀드릴게요” 같은 말은 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이 짧은 간격이 충동적 반응과 신중한 대화 사이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세 번째는 공감적 리프레이밍으로 대화를 시작하기다. 예를 들어, 타 부서 직원이 “왜 이걸 이렇게 처리하신 거예요?”라며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즉각적으로 “왜 저렇게 기분 나쁘게 말하지?”라며 마음을 닫기보다는, “저 사람도 아마 일정이 촉박해서 예민해졌겠구나”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내부 프로세스에 맞춰 진행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혼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문을 열면, 대화의 분위기는 전혀 달라진다. 상대를 방어하거나 논쟁하는 대신, 공감과 협조의 태도로 접근하면 오히려 진짜 문제 해결이 가까워진다.

우호적인 시작은 일상적인 대화뿐 아니라 협상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 협상의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고 인정하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우호적인 시작은 일상적인 대화뿐 아니라 협상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 협상의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고 인정하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협상 상황에서의 효과적 활용

우호적인 시작은 일상적인 대화뿐 아니라 협상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 협상의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고 인정하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협상의 초반에 상대방의 노력이나 전문성을 진심으로 언급하면, 상대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예컨대 “이 프로젝트에 대해 깊이 고민하신 게 느껴집니다. 제안서도 아주 잘 정리되어 있네요”와 같은 말 한마디가 상대의 방어심을 낮추고 협력적인 태도를 끌어낼 수 있다.

협상을 단순한 거래나 조건 싸움으로 보지 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 상대와의 과거 경험이나 쌓아온 관계를 떠올리며 “이전에도 몇 번 함께 일해보면서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해보자. 이런 태도는 대화의 긴장을 낮추고 상대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요구사항을 제시할 때는 소망의 언어를 사용하면 좋다. 강한 주장이나 조건 제시보다는,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상대방의 자발적인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다. “저희도 예산상 여유가 많지 않아서, 이 조건에서 최대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싶습니다”라는 표현처럼 말하면 상대도 주도권 다툼이 아닌 공동의 해결책을 고민하게 된다.

진짜 이기는 말은 따뜻한 말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통념은 일상생활에까지 스며들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가만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말 크고 강한 말이 진정한 해결을 가져왔는가?”

공격적인 언행은 상대를 꺾을 수는 있어도 함께 걷게 만들지는 못한다. 반면 따뜻한 시작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고, 공동의 해결점을 찾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성숙한 태도이며, 대화의 주도권을 목소리가 아니라 신뢰로 되찾는 방식이다.

우리는 더 이상 목소리의 크기로 대화의 승패를 가리는 사회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로 협력을 이끄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일상과 일터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자동으로 전투적인 태도로 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를 그대로 인정하고 부드럽게 위로하고 상대방이 적이 아니라 협력자 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호적인 인사를 건네며 대화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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