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산과 들에서 연한 초록빛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두릅, 미나리, 머위처럼 봄나물은 많지만, 청미래덩굴순은 다른 나물보다 먼저 눈에 띈다. 가시 있는 덩굴식물이라 만지면 주의가 필요하지만, 어린순은 부드러워 나물로 인기가 높다.
지방마다 이름도 다르다. 경상도와 황해도에선 ‘망개나무’, 전라도에서는 ‘명감나무’ 혹은 ‘맹감나무’라고 부른다. 순은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향긋함이 살아난다. 한철 지나면 잎과 줄기가 질겨져 먹기 어렵다.
청미래덩굴은 먹는 순뿐 아니라 뿌리, 잎, 열매, 줄기까지 전부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뿌리는 ‘토복령’이라 부르며, 오래전부터 약재로 사용돼 왔다. 백가지 독을 해독한다고 전해지며, 매독과 임질, 피부병 치료에 많이 쓰였다.
간과 위, 비장에 작용하며 맛은 달고 성질은 평하다. 독이 없고, 하루 복용량은 20~40g이다. 물에 달여 세 번 나누어 마신다. 외용할 경우 가루를 내어 환부에 붙인다. 사포닌, 탄닌, 수지를 함유하고 있어 항염과 해독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의서에서 꾸준히 등장한다. '본초강목'에는 “차와 함께 먹지 말고, 무쇠솥에 달이지 말라”고 적혀 있다. 체질에 따라 신장 기능이 약하거나 음허 증상이 있는 사람은 복용을 피하라는 기록도 있다.
버려진 사람도 살아 돌아오게 한 뿌리
청미래덩굴의 뿌리인 토복령에는 민간 전설이 있다. 매독에 걸린 사내가 소생할 가망이 없자 아내가 산에 버렸다. 굶주린 끝에 뿌리를 씹었고, 며칠 지나자 이상하게 허기가 가시고 기운이 났다. 이후 계속 그 뿌리만 먹었더니 병이 씻은 듯 나았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산에서 돌아오게 한 풀’이라는 별칭 ‘산귀래’의 유래가 된다.
민간에서는 매독뿐 아니라 임질, 태독, 옹종, 정창, 근육통, 각기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했다. 발한과 이뇨 효과도 있어 땀을 내거나 오줌을 통해 독소를 배출한다고 알려졌다.
실제로는 뿌리를 달여 감기나 신경통 증상에 마시고 땀을 내면 빠르게 회복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덜 익은 열매도 먹을 수 있고, 완전히 익으면 붉은색이 돌며 달콤새콤한 맛을 낸다. 산을 타다 갈증이 나면 한 알 입에 넣고 씹으며 갈증을 해소했다는 체험담도 많다.
줄기에는 갈고리처럼 생긴 가시가 달려 다른 식물을 타고 올라간다. 꽃은 7~8월 사이 피고, 열매는 9~10월에 붉게 익는다. 잎은 초여름에 채취해 햇볕에 말려 차로 마셨다.
예전에는 잎을 말려 담배처럼 피우기도 했는데, 몸속 독을 없앤다고 전해져 ‘백 가지 독을 푼다’는 말이 생겼다. 열매는 태워 참기름에 개어 종기나 염증 부위에 바르면 효과를 본다는 민간요법도 함께 전해진다.
떡부터 약재까지, 삶 속에 쓰인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은 식량이 부족할 때 구황식량으로도 활용됐다. 뿌리를 캐서 잘게 썰어 며칠 동안 물에 담가 쓴맛을 뺀 뒤, 말려서 가루를 만들었다. 이 녹말 가루를 밥이나 떡 반죽에 섞어 배를 채웠다. 오래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는 말도 있어 쌀뜨물과 함께 끓여 먹는 지혜도 함께 전해졌다. 단, 어린이와 노약자에게는 먹이지 말라는 금기가 있었다.
농가에서는 또 다른 속신도 있었다. 청미래덩굴을 먹은 사람이 배설한 대변을 못자리에 뿌리면 모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퍼졌다. 지금은 웃고 넘길 옛이야기지만, 한때는 농사 금기였다.
중국에서도 구황식품으로 인정받았다. 선유량, 산기량, 우여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우나라가 망했을 때 피신한 사람들이 이 뿌리를 캐서 먹으며 생명을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잎은 떡을 싸는 용도로 널리 쓰였다. 팥소를 넣은 떡은 여름철 쉽게 상하지만, 망개잎으로 싸면 자연 방부 효과가 생긴다. 향이 떡에 배면서 고유의 풍미도 더해졌다. 이를 이용한 망개떡은 부산 바닷가에서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유리 상자에 넣어 어깨에 메고 다니며 파는 장수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예전엔 여름에만 맛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여름에 채취한 잎을 염장해 사철 이용 가능하다. 줄기는 젓가락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항시 사용하면 건강에 좋다는 믿음에서다.
이렇듯 청미래덩굴은 나물로 먹고, 약으로 다스리고, 뿌리로 굶주림을 견디게 했으며, 잎과 줄기는 떡과 젓가락으로 삶에 스며들었다. 자연 속에서 자생한 풀이지만 사람 손길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단순한 식물이 아닌, 한 시대의 생활을 지탱한 재료였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