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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경쟁 우위를 넘어 경제 안보 및 기술 자립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가 ‘소버린 AI’(Sovereign AI)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버린 AI의 핵심은 각국이 자국의 인프라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독자적으로 개발 및 운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중국보다 빨리 AI 주도권을 확보해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데 있다. 이에 맞서 중국 역시 ‘AI+ 행동’ 등 정책으로 AI 기술 자립을 꾀하는 게 사실이다. 딥시크가 중국 내 통신, 자동차, 로봇 등 자국 내 산업과 빠르게 연계하는 모습은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AI 영토 싸움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영국에 기반을 둔 온라인 미디어 회사 토터스 미디어(Tortoise Media)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AI 지수’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20~2024년) 미국과 중국이 부동의 1,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했다. 참고로 AI 지수는 △구현(인재·인프라·운영환경) △혁신(연구·개발) △투자(정부 전략·생태계) 등 3개 부문과 7개의 세부 영역으로 이뤄진 총 122개의 정량 및 정성 지표를 가지고 점수를 산정하게 된다. 2024년 기준 미국의 종합 점수(100점)와 중국(53.9점) 사이에는 여전히 격차가 존재하지만 중국은 3위권 국가들을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며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임을 입증했다. 싱가포르, 한국, 프랑스, 인도 등 후발 주자들의 약진도 눈에 띄지만 AI의 패권 향방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양강 구도 속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AI 기술 경쟁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참고로 기술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 R&D 투자 대비 얼마나 많은 성과를 내는가를 말한다. 2020~2023년 평균 AI의 R&D 투자에서 미국(1129억 달러, 전 세계의 60.8%)은 중국(150억 달러, 8.1%)과 유럽연합(149억 달러, 8.0%)을 크게 압도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성과 측면에서는 다른 양상이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2014~2023년 누적 기준 생성형 AI의 패밀리 특허(Patent Family) 건수에서 중국(3.8만 건)은 미국(0.6만 건)의 6배에 달하고 있으며 상위 10대 특허 출원 기업 중 6곳이 중국 기업이다. 그럼 성과의 양이 전부일까. 중국보다 성과 측면에서 부족해 보이는 미국의 목지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질적 우위가 중국이 공략하기 어려운 난공불락이라 자신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 논문 건수는 양국이 비슷하지만 논문의 질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인용 건수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10~2023년 누적 기준 과학 논문 건수는 중국 1만2500건, 미국 1만2000건, 영국 3000건, 독일 2000건 등 순으로 중국과 미국이 대등하다. 다만 논문 인용 건수 측면에서는 미국이 약 17만 건으로 중국 10만 건보다 크게 앞서 있다. AI 인재 양성 측면에서도 중국은 상위 20% 연구자를 양성하는 비율(47%)은 세계 1위지만 최상위 2% 엘리트 연구자들이 꼽는 최적의 근무지로 중국(12%)보다는 미국(57%)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문득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선발제인’(先發制人)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상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기 전에 먼저 공격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45%에 이르는 상호관세를 부과한 이유가 단순히 무역 적자를 해소하려는 의도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대략 2040년으로 전망되는 ‘초인공지능(ASI) 시대’가 15년도 채 안 남은 상태에서 미래 기술의 총아인 AI 패권을 향한 다소 잔인한 조급함이 느껴진다. 무역 전쟁의 승자가 없듯이 기술 패권 싸움도 전 세계의 상처만 남기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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