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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획일적 규제로 韓 산업 발목 잡나
하지만 이를 첨단산업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지금도 주 52시간 규제 때문에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비롯해 많은 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은 특히 산업계의 잇단 요청에도 반도체 특별법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 중 희망자에 한해 한시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완화해 달라는 기업들의 간절한 요청사항을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은 세계적으로 국가대항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만 근로시간 규제 족쇄를 차고 있어 경쟁력이 후퇴할 수 있다고 기업들은 호소하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AI 시대 들어 중요성이 더 커진 반도체 관련 지원에 혈안임에도 우리 기업들은 일해야 할 때 마음대로 일도 할 수 없는 처지다.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산업에서 고소득 R&D 연구 개발자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예외로 인정해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미국은 연간 10만 7432달러(약 1억 5000만원) 이상 버는 고소득 근로자 등에 한해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운영 중이다. 이 같은 요청과 달리 정치권이 근로시간을 더 줄이는 공약을 내면서 관련 논의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짙은 논의에 불과하다.
정치권에서 제안한 주 4일제, 4.5일제는 주 52시간 제도와 마찬가지로 전체 업종별 산업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에서 시작한다. 기업의 R&D 직종은 또 고려하지 않았다. 국내 산업은 누가 키우고 발전시킬 것인가. 근로시간 제도 도입 여부는 법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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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쟁력 확보, 인재 일할 기회 줘야
정치권은 산업의 특징을 먼저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반도체, AI와 같은 신성장 첨단산업은 남의 것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과제를 전제로 한다. 초기의 혁신 기술은 어렵고 위험 부담이 크며 신제품은 시장도 작다. 기업의 지속성장은 늘 어려운 문제다. 제품과 기술은 수명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품이 경영에 기여한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기업은 늘 미래의 새 먹거리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은 늘 불확실하다. 과제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하고, 궁극적으로 기업의 제품과 기술 상용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이 단계에서 R&D는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R&D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가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벤치마크로 삼을 만한 대상은 거의 사라졌다. 누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도해야 하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국내 제조업의 근간인 철강, 석유화학, 배터리 산업은 중국발(發) 저가 공세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스스로 신성장 R&D를 게을리한 결과이자 주 52시간 근무제 등이 발목을 잡은 부분도 있다. 중국은 AI와 양자기술, 바이오, 2차전지는 이미 한국을 멀찍이 따돌렸고, 반도체마저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시스템반도체 설계 기업을 비교했을 때 한국의 15배 이상인 3500개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회사가 있다. 중국이 양적·질적으로 모두 우리를 앞 선지 오래됐다. 이 같은 중국의 성공은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과 우수인력이 R&D에 사활을 걸면서 밤낮을 잊고 열심히 일한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권은 주 4일제, 주 4.5일제 논의에 앞서 국내 산업을 발전시킬 방안을 먼저 생각해 보라.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인재들에게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산업 경쟁력을 살리는 길이다. 노는 날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더 일을 해야 할 때 더 집중해서 일하게 할 수 있도록 연구원들에게 선택권을 주자.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는 시간한계를 풀어줘야 한다. 추가 근무시간은 파격적인 보상을 통해 연구원들이 성취감과 성공에 대한 보상을 동시에 느끼게 해줘야 한다.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일하고, 원할 때 쉰다. 그런 사람들은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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