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미국이 한국의 스마트 조선소 기술을 전략적 파트너십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새로운 축으로 'K-조선'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디지털 트윈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한 국내 조선 빅3(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의 스마트 조선소 모델이 미국의 조선 산업 재건에 핵심 솔루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최근 자국 내 조선산업 인프라 노후화와 숙련 인력 부족을 이유로 한국의 기술 이전과 현지 협력을 본격 요청했다. 이는 지난 4월 한미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미국 측이 먼저 조선 협력 문제를 꺼낸 사실로도 확인됐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출마로 조선업 부활 공약이 다시 부각되면서 K-조선 기술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미 간 조선 협력 열기의 상징적 장면은 지난 4월 30일 존 펠란 미 해군장관의 방한이었다. 그는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잇달아 방문하며, 자동화 조립 시스템과 디지털 관제 기술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은 이 현장 방문은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명확히 보여주는 단서로 해석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스마트 조선소 구현을 위한 체계적인 기술 투자를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는 본격적인 결과물이 나타나는 시기다.
HD현대는 자회사인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을 통해 3단계 스마트 조선소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특히 미국 방산 AI 기업 ‘팔란티어’와 손잡고 2030년까지 ‘지능형 자율운영 조선소’를 구현한다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현재는 1단계 ‘보이는 조선소’를 완성한 상태다. 이 단계에서는 가상의 디지털 조선소를 3D로 구현하는 ‘트윈포스’ 기술을 통해 설계·제작 공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오류와 낭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오는 2026년까지 2단계 ‘연결-예측 최적화 조선소’를 마무리하고, 이후 전 공정의 자율화를 통해 생산성과 안정성 모두에서 비약적인 향상을 이룰 방침이다.
HD현대는 이 모델이 적용될 경우 선박 건조 기간이 기존보다 30% 이상 단축되고, 생산성은 최대 30% 향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오션은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2021년 ‘디지털 생산센터’를 구축하면서 스마트 조선소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이 센터는 실시간으로 공정을 추적·관리하는 스마트 생산관리센터와 원격으로 시운전 선박을 관리하는 스마트 시운전센터로 구성돼 있다.
이 시스템은 드론과 IoT 기술을 통해 자재 적치 공간을 자동 파악하고,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경로 추천’ 기능도 갖추고 있다. 특히 시운전 선박을 예인선이나 헬기 없이 원격 진단할 수 있어 안전성과 비용 효율성에서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오션은 이러한 기술력을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에 단계적으로 이전해, 한국형 스마트 조선소 모델의 해외 확산에도 앞장서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모든 선박 건조에 3D 디지털 도면을 적용하며 ‘100% 무도면 조선소’ 시대를 열었다. 도면 출력 없이도 모든 공정을 디지털로 처리할 수 있어 생산속도와 품질이 동시에 개선됐다. 여기에 자동 용접·도장 시스템 등 로봇 기술을 접목해 일부 공정은 효율성이 30% 이상 상승했다.
최성안 삼성중공업 부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데이터 기반 생산과 AI 접목으로 24시간 운영 가능한 조선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선언이 아니라, 조선 산업 전반을 디지털 제조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장기 비전이자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 전략이다.
한국의 스마트 조선소는 단순한 기술 경쟁력을 넘어, 한미 간 전략적 산업 동맹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조선업은 해군력, 물류 안보, 에너지 공급망 등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로, 미국 입장에서도 기술 자립의 핵심 요소다. 이에 따라 한국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은 외교·통상 협상의 ‘레버리지’로도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들이 지난 수년간 축적한 스마트 조선소 기술이 미국의 조선 재건 수요와 맞물려 의미 있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단순한 수출을 넘어 기술 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