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차기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가운데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관세 협상에 본격 착수했다. 정부는 단기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전략적 인내를 선택하며, 조선업 협력을 중심으로 한 ‘패키지 딜’을 구상 중이다. 한미 간 실무 채널은 가동됐고, 본격적인 주고받기가 예고되며, 7월 8일 상호관세 유예 기한을 앞둔 외교·경제 전선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6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장성길 통상정책국장 주도 하에 실무진을 워싱턴DC에 파견,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첫 실무 회동을 가졌다. 이 회동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실제 ‘프레임워크 협상’의 물꼬를 트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해 일본, EU 등 18개국과 동시에 통상 이슈를 다루는 거대한 다자협상 구조를 띠고 있으며, 주요 의제는 관세·비관세 장벽, 디지털 무역, 경제안보, 원산지 규정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그러나 프레임워크의 구체적인 구조와 세부 내용은 미국 측의 보안 요구로 철저히 비공개 상태다. 이는 각국이 자국 이익을 최대한 방어하면서도 미측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줄타기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한국은 조선업 협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패키지 전략으로 미국의 환심을 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 진행된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한국 측이 제안한 조선 협력안이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미국 해군력 강화와 자국 조선산업 재건을 꾀하는 미국의 전략적 수요에 부합하는 방안을 내놨다. 한국 조선업체들의 대미 투자 확대는 물론, 미국 현지에 조선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 아카데미 설립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실행안을 제안했다. 이러한 협력은 단순한 산업 투자 차원을 넘어, 한미 경제안보 동맹을 강화하는 실질적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또한 미국 에너지 분야의 관심사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현지 실사단 파견을 통해 투자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조선·에너지 분야의 협업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단순한 ‘거래’를 넘어서 양국 산업 전반의 상생 모델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의 협상은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는 실질적인 결론이 도출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주요 이슈는 대통령 간 톱다운 방식의 결정이 필요한 만큼, 대선 이후 정상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방식이 유력하다.
산업부는 국내 정치 일정과 미측의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일본·중국·베트남 등 이웃 국가들의 협상 동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다중 외교 방정식’을 가동하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는 실익 중심의 ‘패키지 딜 밑그림’에 집중할 것”이라며 “국회, 산업계와도 긴밀히 소통하며 시간을 두고 협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국내 정치 일정을 고려한 ‘시간 끌기’가 아니라, 동시다발적 다자협상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신중한 접근이다. 특히 중국·일본이 각각 어떤 카드로 미국과 협상에 나서는지 면밀히 주시하면서, 한국만의 차별화된 협상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는 15~16일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는 한미 관세협상에 있어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 회의에 맞춰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방한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협상 요구 사항이 오갈 가능성이 높다.
이 자리에서 한국이 제시하는 조선·에너지 협력 패키지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거나, 미국 측의 초기 반응이 확인된다면, 전체 협상 윤곽이 한층 선명해질 전망이다. 동시에 미국의 다자 프레임워크 내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부여받을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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