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한국 경제의 상징이자, 재벌 지배구조 논란의 중심에 있다.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의 중추에는 늘 삼성생명이 자리해왔다. 단순한 금융회사를 넘어 그룹 핵심 계열사를 연결하는 심장이자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를 가능하게 한 실질적 고리 역할을 해온 셈이다. 2005년 금산분리법 개정과 순환출자 해소 논란이 뜨거웠던 그때도, 2025년 삼성생명법이라는 입법 논쟁이 존재하는 지금도 삼성생명은 여전히 삼성 지배구조의 심장부에 있다. ‘삼성의 생명’ 시리즈를 통해 삼성생명이 20년 넘게 지배구조의 생명선이 된 배경과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삼성생명법을 둘러싼 논쟁을 짚어본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시장 가치가 법적 한도를 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지더라도 삼성생명이 여전히 삼성전자 지분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한, 재벌 지배구조의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법안의 본질이 단순히 과거 순환출자 구조의 잔재 청산을 넘어 보험계약자 자산이 총수 일가의 지배권 방어에 동원되는 현행 ‘보험-전자-물산’ 축의 구조적 문제를 정상화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에서 다시 논의되고 있는 삼성생명법은 삼성 소유지분도를 통해 드러나는 삼성그룹 내 지배구조의 실체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공한 지난해 5월 기준 삼성 소유지분도를 보면, 이재용 회장 등 총수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삼성화재 등 주요 계열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순환출자 해소 역사와 2024년 소유지분도의 의미
2000년대 초반, 삼성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했다.
이 구조는 보험계약자의 자금이 총수의 경영권 방어에 동원된다는 점에서 금산분리법, 공정거래법, 보험업법을 포함한 법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시민사회는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 강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으며, 이로 인해 삼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과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2018~2019년 계열사 지분 매각 등 일련의 조치로 공식적인 순환출자 고리는 해소됐다.
그러나 현재 삼성의 소유지분도를 살펴보면, 이재용 회장과 그 특수관계인들이 삼성물산(19.3%)을 지배하고 있으며, 삼성물산은 삼성생명(19.3%), 삼성전자(20.7%), 삼성화재(17.5%) 등 주요 계열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 삼성화재 15.4%, 삼성카드 71.9%, 삼성증권 29.4%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금융·전자 계열사에 걸쳐 그룹의 ‘심장’ 역할을 한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종영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도 반영된 바 있다. 드라마는 순양생명(=삼성생명)을 차지해야 순양그룹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공식적인 순환출자 고리는 사라졌지만, ‘이재용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직선형(피라미드형) 지배구조의 핵심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실적은 그룹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 계열사도 삼성전자 주가에 따라 자산가치와 건전성, 지급여력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로, 여전히 ‘보험계약자 돈이 총수 경영권 방어에 동원되는’ 형태의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 보좌관의 집요한 추적과 ‘삼성생명법’의 쟁점
이런 구조적 문제를 국회에서 집요하게 파헤친 인물이 바로 김성영 전 보좌관이다. 2014년 이종걸 의원실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다듬던 김 전 보좌관은 삼성생명이 2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득원가 기준 덕분에 법상 보유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단순히 법안 초안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삼성생명과 금융위원회, 보험업계, 시민단체, 국회 정무위원회 등 여러 관계자를 만나 구조의 허점과 법의 사각지대를 끈질기게 파헤쳤다.
김 전 보좌관은 “이 문제를 접하고 보험계약자 보호와 금융 투명성, 재벌 특혜 해소를 위해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는 반드시 시가 기준으로 변경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며 “취득원가 기준이 유지되는 한 삼성생명만이 사실상 예외적인 특혜를 누리고, 보험계약자 돈이 그룹 지배권 방어에 동원되는 구조는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생명법의 핵심은 보험사의 계열사 채권·주식 보유 한도를 산정하는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공정가액(시가)’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현재 총자산 대비 3%로 제한된 계열사 투자 한도를 실제 시장가치 기준으로 적용할 경우, 삼성생명은 8.5%의 삼성전자 지분(현 시가 약 37조원) 중 3% 초과분, 즉 약 24조원을 점진적으로 매각해야 한다.
이때 법안에는 ‘5년 이내 단계적 매각’과 필요시 금융위원회가 2년 추가 유예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된 만큼 시장 충격 우려는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일시에 시장에 주식을 쏟아붓는 일명 ‘폭탄 매각’이 아닌 단계적 매각이라는 보완책이 있는데도 삼성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는 문제는 10년 이상 지속된 사안”이라며 “지분 매수나 조정 등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가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생명법의 논쟁은 단순히 과거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문제가 아니라 보험사의 자금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에 동원되는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심장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며 “삼성이 스스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생명법 통과 여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비롯해 보험계약자의 안전망, 그리고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성에도 큰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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