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잔액이 10억 원을 초과하는 고액 예금 계좌 수가 사상 처음으로 10만좌를 넘어섰다. 이는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처음 있는 일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매우 많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4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저축성 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 원을 초과하는 계좌는 총 10만좌로 집계됐다. 지난해 6월 말 9만7000좌였던 고액 예금 계좌 수는 불과 6개월 만에 3000좌가 증가하며 처음으로 10만좌를 돌파했다.
예금의 대부분은 기업 명의로 개설된 계좌들이다. 본격적인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자, 기업들은 유보 자금을 적극적으로 은행에 예치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2021년 말 8만9000좌였던 고액 예금 계좌 수는 2022년 6월 9만4000좌, 같은 해 말 9만5000좌로 증가한 후 잠시 정체됐다. 그러나 2023년 하반기부터 다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잔액 기준으로도 고액 예금 규모는 크게 확대된 상황이다. 2024년 말 10억 원 초과 저축성 예금 잔액은 총 815조8100억 원으로, 6개월 전인 2023년 6월 말(781조2320억 원) 대비 34조5780억 원(4.4%) 증가했다.
이로써 10억 원 이상 고액 예금 잔액이 처음으로 800조 원을 넘어서며 또 하나의 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특히 정기예금과 저축예금의 고액 계좌 수는 각각 6만1000좌, 5000좌로 직전 반기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한 반면, 기업자유예금 계좌 수는 3만1000좌에서 3만4000좌로 늘어나며 증가세를 주도했다.
기업자유예금은 기업이 일시적으로 남는 자금을 단기적으로 예치하는 상품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클수록 선호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 확산되면서 '예금 수요' 늘어나
기업들의 고액 자금이 예금으로 몰린 배경에는 글로벌 불확실성도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인해 대내외 리스크가 커지자, 기업들은 투자보다는 현금 확보에 집중하며 은행 예치를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에 대한 투자도 크게 확대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 18일까지 금 현물 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50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배 급증했다. 일평균 거래량도 353.6㎏으로, 전년(103.5㎏) 대비 241.45% 늘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2024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 기대감이 시장 전반에 확산되면서 특히 법인을 중심으로 고금리 예금에 자금을 선제적으로 묻어두려는 수요가 늘었다"라고 분석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2.75%까지 내려와 있는 상태며, 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액 자산가와 기업들은 보다 안정적인 자산 운용을 위해 예금과 금 등 저위험 자산으로의 쏠림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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