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글로벌 항공사, 세계 일등, 고객 만족. 기업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수식어들이다. 대한항공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화려한 광고 문구 뒤편, 그 비행을 진짜로 책임지는 사람들—객실승무원들의 삶은 그렇게 빛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이 심각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인력은 줄었지만 업무는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어난 상황에서, 승무원들의 휴식권과 노동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 객실승무원 수는 최근 약 700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이후 인력 감축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고 해도,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인력이 줄어든 만큼 업무량이 줄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줄어든 사람으로 늘어난 스케줄을 감당하라’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한 승무원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실제로 쉴 수 있었던 날은 35일. 회사가 보장해야 할 월 평균 10일 기준보다도 적다. 긴 비행 뒤 주어져야 할 충분한 회복 시간도 없다. 장거리 노선의 경우 3박 4일 비행 뒤 2일의 휴식이 주어지지만, 일정이 짧은 2박 3일 비행을 선택하면 4일의 휴일이 배정되는데, 이 일정을 한 번만 치르면 남은 한 달 동안 쉴 수 있는 날이 단 4일로 줄어든다. 비행 이후에도 ‘쉼’은 선택이 아닌 ‘사치’가 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쉴 틈’이 없다.
겉으로는 매달 8일의 휴일이 제공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확정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은 단 하루. 나머지 는 회사의 스케줄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 ‘유동적’ 휴일이다. 휴일은 있으나 쉴 수 없는, 기묘한 착시다.
더 심각한 건 연차 사용 방식이다. 분명 법적으로 보장된 ‘자율적 휴가’지만, 현실에서는 회사가 정한 유급휴무(PDO)로 전환되기도 하고, 관리자 동의를 받지 못하면 거절되기도 한다.
게다가 회사는 생리휴가나 돌봄휴가를 쓰지 않은 직원에게 진급 가점을 부여한다. 즉, ‘쉬지 않은 사람’이 유리한 구조다. 이는 명백히 여성에게 불리한 간접차별이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소지까지 있다. 휴가를 쓰는 게 벌을 받는 일이 되는 구조 속에서, 직원들이 과연 얼마나 건강하고 집중된 상태로 비행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단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항공안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충분한 휴식과 예측 가능한 스케줄을 항공사에 의무로 요구한다. 피로한 승무원이 조종실에, 객실에 있을 때, 위험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진정한 글로벌 항공사는 고객에게 미소 짓는 항공사가 아니라, 직원에게 먼저 존중을 베푸는 기업이다. 지금 승무원들은 말하고 있다. 연차는 내 권리라고. 쉬고 싶다고. 내 삶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절규는, 여전히 비행기 소음 속에 묻히고 있다.
이제 대한항공이 답할 차례다. 직원의 피로 위에 날아오른 ‘고객 만족’은 진짜일 수 없다. 진정한 안전과 서비스는, 존중받는 노동에서 출발한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해진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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