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넷플릭스는 자유롭고, 우리는 족쇄를 찼다.”
국내 방송업계에서 나온 이 한마디는 방송통신위원회 규제 정책이 만들어낸 산업 불균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국내 방송사는 광고 형식과 편성, 재승인 심사 등 여러 규제를 받는다. 반면, 글로벌 OTT 사업자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사실상 ‘규제 프리존’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한 ‘2024년도 방송시장 경쟁 상황 평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넷플릭스는 이용자 점유율은 39%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국내 매출은 약 8233억원에 달했지만,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 납부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국내 방송사와 OTT 플랫폼은 매출 일정 비율을 방발기금으로 납부한다. 2023년 전체 방발기금 수입 중 방송 사업자가 부담한 법정부담금은 총 6092억원으로 전체 48.63%를 차지했다. 방송광고의 경우 국내 방송사는 시간과 형식에 대한 상세한 규제를 준수해야 하고, 간접광고나 중간광고 일정 기준도 맞춰야 한다. 또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매년 납부, 일정 주기로 까다로운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거친다.
이와 달리 글로벌 OTT는 광고 규제는 물론 방발기금 납부 의무가 없다. 방송 콘텐츠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편성 제한이나 심의 부담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같은 영상 콘텐츠를 다루고 있지만 규제 강도는 플랫폼에 따라 갈리는 셈이다.
구조적 불균형은 단순한 법 적용 미비를 넘어 제도 전반의 이중구조에서 발생한다. 방송법은 전통 방송 플랫폼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넷플릭스 같은 해외 OTT는 ‘방송’이 아닌 ‘부가통신사업자’로 간주해 주요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사각지대는 규제 회피를 넘어 국내 사업자에게 ‘역차별’로 작용한다. 웨이브·티빙·쿠팡플레이 등 국내 OTT는 방송사 출신이거나 광고 기반의 수익 구조를 택한 경우가 많아 방송 규제에 일정 부분 묶여 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정액제 수익 모델과 자체 콘텐츠 중심 운영으로 관련 규제를 우회해 왔다.
방통위도 이 같은 불균형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규제 형평성 확보’가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보기에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방송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에 대한 실질적 규제 권한이 부재한 상황에서 제도적 ‘일원화’만 외친다고 국내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방송사는 콘텐츠 경쟁력보다 규제 위험 관리에 에너지를 더 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광고 심의 리스크, 기금 납부 압박, 편성 제한 등 기획과 투자 단계부터 창의성이 제한되면서 전체 콘텐츠 생태계의 다양성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플랫폼 국적이 아니라 ‘시장 내 영향력’을 기준으로 규제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국내 유료 OTT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점유하고,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로 글로벌 흥행 수익을 내고 있어 국내 제작자들과 수직적 불균형 계약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국내 케이블TV 관계자는 “핵심은 ‘규제 완화’나 ‘규제 강화’가 아니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서비스에 동일한 규칙을 적용한다는 원칙”이라며 “국내외 사업자 간 법적 의무와 권한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방통위가 제재 권한 확보, 국외 사업자 기금 참여 유도, 국내 콘텐츠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는 공정한 시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방통위가 진짜로 산업을 키우고 싶다면 누가 시장을 키우고 있고 누가 책임을 피해 가고 있는지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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