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산과 들에 사람이 몰린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고, 누군가는 비닐봉지를 들고 밭을 맴돈다. 공통된 목적은 하나다. 쑥과 명이나물이다.
이 두 나물은 외국에선 잡초로 취급되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쑥은 한반도 전역에 자생하며 약 5000년 전부터 식재료로 사용돼 온 기록이 전해진다. 문헌 기록만 해도 조선 시대의 '향약집성방', '동의보감'에도 등장할 만큼 민간 약용 기록이 남아 있다.
쑥은 예로부터 배탈, 소화불량, 출혈 등의 증상에 민간요법으로 활용됐다. 가열하거나 삶은 후 죽으로 끓여 먹거나, 생잎을 지혈용으로 사용하는 식의 생활 기록도 전해진다. 약재가 귀했던 시절,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생 식물로 널리 쓰였다.
명이나물 역시 봄철 한정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해발 500m 이상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데다 수확 시기도 한 달 이내로 제한된다. 향이 강한 탓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장아찌와 쌈채소 용도로 활용되며 꾸준히 수요가 유지된다.
하루 500kg을 쑥을 수확하는 고령 작업자들
지난달 26일 방송된 EBS ‘극한직업’에는 전라남도 한평의 한 쑥 농장이 소개됐다. 이곳의 일손은 평균 연령 82세의 고령자들이다.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쑥을 캐고 선별과 포장을 거쳐 하루 약 500kg을 출하한다.
이들이 다루는 쑥은 주로 하우스에서 재배된 부드러운 어린 쑥이다. 향이 짙은 노지 쑥보다 식감이 연해 쑥국, 쑥전, 쑥밥 등의 요리에 적합하다. 손질된 쑥은 100g, 200g 단위로 포장돼 대형 마트와 인근의 50년 전통 떡집으로 납품된다.
오전에는 수확, 오후엔 선별과 포장이 이어진다. 무게 측정은 전부 손으로 진행된다. 수십 년 반복된 경험으로 감각만으로도 오차 없이 무게를 맞춘다.
쑥 작업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지만, 작업자들은 노동을 중단하지 않는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나와서 몸을 움직이고 대화하는 일상이 낫다고 말한다.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쑥전을 부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봄 한철에만 생산하는 쑥설기와 쑥인절미는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 있는 간식이다. 가족 단위로 운영되는 이 떡집은 봄마다 주문량에 맞추기 위해 전원이 새벽부터 일에 투입된다.
명이나물, 봄에만 허락되는 희소 식재료
명이나물은 산마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특유의 알싸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며, 주요 성분인 알리신이 포함돼 있어 입맛을 돋우는 데 쓰인다.
해발 5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이 나물은 재배 환경과 생육 조건이 까다롭다. 씨를 심은 후 수확까지 약 5년이 걸리며, 수확 가능 시기도 이른 봄 한 달 남짓으로 제한돼 있다.
채취 과정은 고되다. 경사진 땅에서 무릎을 굽히고 손으로 하나하나 꺾어야 한다. 향이 강해 손끝이 얼얼할 정도지만, 수요는 매년 끊이지 않는다. 봄철 명이나물 수확량은 약 2톤으로 공급이 매우 제한적이다.
명이나물은 대부분 장아찌 형태로 유통된다. 생잎 상태로 구매하기는 어렵고, 병에 담긴 절임 제품을 통해 소비된다. 고기와 함께 곁들이면 느끼함을 줄이고, 입 안에 깔끔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식당 반찬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대량 재배나 하우스 생산이 거의 불가능해 한정된 지역과 계절에만 만날 수 있다. 제철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기에 봄철에 가장 집중적으로 소비된다.
짧은 봄을 기억하게 만드는 식탁 위의 나물
쑥과 명이나물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이 나물들은 짧은 계절을 식탁 위에 붙잡아두는 방식이자, 한 세대가 몸으로 기억한 생존의 흔적이다.
쑥은 배고픔을 견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었고, 명이나물은 산길을 올라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계절 식품이었다. 지금은 마트에 채소가 넘쳐나지만, 봄이 되면 사람들은 여전히 직접 쑥을 캐고 명이나물을 담근다.
흙에서 고개 내민 쑥 한 포기, 장아찌 병 속의 명이나물이 식탁에 오르면 그제야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두 나물 모두 한 달 남짓한 짧은 시기에만 수확할 수 있고,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해외에선 흔한 풀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선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쑥과 명이나물은 지금도 계절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식탁 위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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