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왕보경 기자】“매출이 10%까지 떨어졌어요. 공친 날도 다반수에요”
긴 연휴를 앞둔 4월의 마지막 날 헌법재판소 일대를 방문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이 끝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인지라, 인근에서 집회나 시위는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여전히 헌재 주변에 경찰 버스가 줄지어 있었고, 일대를 경찰관들이 경호하고 있었다.
이 같은 통제가 정치적 시위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통상적인 경호 조치인지 궁금해 한 경찰관에게 물었다. 그는 “지시가 내려와 경호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존에도 헌재 주위에 이런 경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짧게 답했다.
헌법재판소 양옆을 살펴보니 식당과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영업 중이었다. 바로 건너편에도 카페나 식당, 술집 등이 손님맞이에 한창이었다. 건너편에 위치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말부터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최수호(26)씨는 “(탄핵 시위 당시) 통행은 할 수 있었지만 오고 가기 불편하다 보니 고객들이 잘 오지 않았다”며 “경제가 좋지 않다 보니 소비가 많이 줄었는데 (계엄 직후) 더욱 돈을 덜 쓰는 경향이 있었다. 외국인들 방문도 조금 줄었었다”고 전했다.
해 질 무렵 인근 상권이 제법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공휴일을 하루 앞둔 저녁, 선선한 날씨 덕인지 인근 식당의 야장(야외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하는 장사)에서는 사람들이 맥주를 들이켜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시위 여파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고 있는 신호인가 싶었다.
늦은 저녁 헌재에서 안국역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노래 연습장에 방문했다. 연휴 전날 오후 10시가 다 된 시간 나름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시점에도 가게 내부가 꽤나 한산했다. TV를 보고 있던 사장님이 기자를 반겨줬다.
30년 간 이 자리에서 노래 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는 노병수(80)씨와 한참 동안 긴 이야기를 나눴다. 노씨는 기자에게 그간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계엄령 선포 이후 제대로 된 장사를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헌재 일대가 지난 4개월간 마비 상태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 변론에 직접 출석하는 날 경찰은 안국역 2·3번 출구 일대를 통제했다.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등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헌재 정문 주변을 경찰 기동대가 둘러싸고 일반인의 출입이 전면 제한됐다. 지난 몇 달간 노씨가 가게에 출근할 때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다. 실제 운영 여부를 확인한 후에야 경찰이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당시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위 소음에 TV 소리를 키우다 못해 난청이 생길 지경이었다고 설명했다. 탄핵 시위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무게도 7kg이나 빠졌다. 어느 날은 파란 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윤 전 대통령 지지자에게 태극기로 얻어맞고 얼굴에 멍이 들기도 했다.
이같은 아수라장 속에서 안국역 상권에 놀러 온 손님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뚝 떨어진 매출이 가장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계엄령 이후 약 4개월간 노씨는 매출이 10%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10% 감소한 것이냐”고 되묻자 그는 “90%가 줄었다. 기존 매출의 10% 수준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손님이 하도 줄어 이따금 방문한 손님들에게 자꾸 말을 걸게 된다고 덧붙였다. 닷새 연속 손님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코로나19 시기보다도 적막한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그러나 수도세를 비롯한 각종 부대 비용, 세금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지출해야 했다.
이야기 도중 한 남성이 가게에 방문해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아래층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씨였다. 변호사와 소송에 관한 대화가 오가기에 슬쩍 껴보니 이번 탄핵 심판 시위로 인한 피해 보상 청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씨는 헌법재판소 일대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자영업자 50여명이 영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청구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버스가 통제하고 자영업자들 출입도 막고,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카드 결제 기록만 살펴봐도 매출액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권위원회에서 면담을 받았지만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고 하더라. 종로경찰서 서장실에도 방문했다. 종로구청에는 네 번이나 찾아갔다. 법 조항이 없어서 도와줄 수가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청에서도 헌재 인근 상인들의 고충을 알고, 피해 회복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상공인 이자 지원 사업, 국세 및 지방세 등 세금 유예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미 겪은 매출 손실에 비하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질적인 수입이 0원에 가까운 상황에서 그저 내야 할 돈의 시기를 늦춰주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피해를 본 건 헌법재판소 인근의 자영업자들뿐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자영업자 폐업률이 상승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은행 연체율은 10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정부의 폐업 지원금 접수는 석 달만에 1년 목표치의 90%에 도달했다. 자영업자들의 업황 회복을 위해 구조적인 지원책이 시급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대화 말미에 손님들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노씨는 손님들의 주문에 분주히 움직였다.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이 와서 즐겁다. 하루에 세 팀이나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취재를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고생한다며 그가 손에 쥐여준 음료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늦은 저녁 북적이는 거리의 모습이 반가웠다. 자영업자들에겐 단순히 장사가 잘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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