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익’ 없는 배제·고립, 조직구조 문제삼아야 할 때[별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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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익’ 없는 배제·고립, 조직구조 문제삼아야 할 때[별별법]

이데일리 2025-05-03 07:30:00 신고

3줄요약
[강서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신고 이전보다, 그 이후 더 강력히 또 은밀하게 작동한다. 공식적인 사과나 조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피해자가 ‘신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조직은 빠르게 반응한다. 함께 하던 프로젝트에서 이름이 빠지고, 회의 초대에서 누락되며, 상사는 피드백을 줄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 중요한 업무에서 밀려난 자신을 느끼게 된다. ‘불이익’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피해자는 이를 감지한다. 조직이 자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더 나아가 본인이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는 걸 느낀다.

강서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 (사진=원 제공)


현행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법조문에는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라고만 규정돼 있지만, 이는 전보·징계·평가 차별·교육 기회 제한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제109조 제1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 문제되는 것은, 법이 열거한 ‘조치’의 바깥에서 이뤄지는 배제다.

대표적인 예가 ‘명확한 인사권 행사’로 볼 수 없는 미세한 불이익이다. 프로젝트 중심의 업무 배정에서 비공식적으로 제외되거나, 관리자와의 교류가 단절되고, 조직 내 정보 접근이 차단되는 방식의 소극적 고립이 이뤄진다. 겉으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직무 수행의 기회가 사실상 박탈당하는 결과를 맞게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소극적 배제조차 회사 측에서는 “경영상 판단”, “부서 간 조정”, “성과 기반 업무 재배치”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법률상 인사권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이고, 실질적으로 업무상 필요성과 정당성이 존재한다면, 그 인사조치가 괴롭힘 신고와 무관하다는 회사 측 주장을 뒤집는 것은 쉽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 대응 전문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현실적인 한계는 입증 구조가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조직 내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그 변화가 ‘신고 이후’에 발생했음을 입증해야 하며, 그 변화가 다른 직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음을 해명해 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교 가능성조차 없는 환경에서, 피해자는 결국 “조직이 나를 배제하고 있다”는 감각만을 남긴 채, 법적 보호망의 바깥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비가시적 불이익’은 결국 자발적 퇴사의 압박으로 이어진다. 신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이제 그만두는 게 맞겠죠”라고 말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괴롭힘 행위의 원인자보다도 문제제기한 자신이 더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사직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가 강요한 결과에 가깝다.

이러한 현실을 방치한 채,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한 대응이 진전될 수는 없다. 법은 이제 ‘행위의 금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맥락 속 보호’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신고 이후 조직 내부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배제 구조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현행 법제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우선 괴롭힘 신고 이후 일정 기간 이루어지는 인사나 업무 배정 등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과 필요성을 사용자 측이 설명하고 입증하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피해자가 스스로 ‘불이익’을 주장하고 입증해야 하지만, 그 내용이 정서적인 영역까지 걸쳐 있는 경우가 많아 실제 소명은 매우 어렵다. 또한 공식적인 조사나 판단이 마무리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신고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가 작동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예컨대 신고 이후 일정 기간 인사 평가 및 보직 조정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과 조직 내 고립 방지를 위한 감시 체계 마련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구조는 ‘불이익이 발생한 이후’에야 법이 개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예방보다는 사후 규제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더 나아가 ‘불이익 조치’의 개념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형식적인 인사권 행사에만 초점을 둬서는 안 된다. 업무 배제, 정보 차단, 의사결정 참여 배제 등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직무 수행을 위축시키는 방식까지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해석의 외연을 넓히고, 규범과 지침을 정비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괴롭힘이 멈췄다고 해서 피해가 끝난 건 아니다. 신고 이후의 불이익은 말보다 더 은밀하고 퇴사보다 더 조직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제는 그 침묵과 배제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할 때다.

■강서영 변호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현)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 자문위원 △(현)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현)법무법인 원 소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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