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황금빛 꽃잎이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난다. 달맞이꽃은 그 이름처럼 밤에 피어나는 신비로운 식물이다. 한국의 길가와 강둑, 척박한 돌밭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달맞이꽃은 단순한 야생초가 아니다. 먹을 수 있는 식재료이자 약재이기도 하다.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온 귀화식물이지만 이제는 한국의 풍경과 식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달맞이꽃에 대해 알아봤다.
달빛 따라 자라는 식물의 비밀
달맞이꽃은 바늘꽃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초본식물이다.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특히 칠레와 멕시코다. 북아메리카를 거쳐 한국, 일본, 중국 등지로 퍼져나가 귀화식물로 정착했다. 높이는 50~90cm까지 자라며, 줄기에는 잔털이 빽빽이 나 있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선형으로, 길이 5~15cm, 너비 5~12mm 정도다. 뿌리 근처의 잎은 로제트 형태로 퍼져 겨울을 난다. 꽃은 7월 무렵 노란색으로 피어나지만, 빨간빛이나 분홍빛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밤에 활짝 피어나 나방이나 박각시 같은 야행성 곤충을 끌어들이고, 아침이면 오므라드는 독특한 습성을 가졌다. 그래서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포도주 같은 향기를 뿜으며 야생 동물도 유혹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특히 물가, 길가, 하천, 제방, 묵은 밭, 돌이 많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토양을 좋아하지만, 환경이 열악해도 적응력이 뛰어나다.
서울식물원의 기록에 따르면, 황색 꽃이 피는 달맞이꽃, 잎이 긴 긴잎달맞이꽃, 키가 작은 애기달맞이꽃 등 비슷한 종과 구분된다.
제철과 채취, 요리의 세계
달맞이꽃은 단순한 야생초는 아니다. 뿌리부터 꽃, 씨앗까지 모두 활용 가능한 자원이다. 달맞이꽃의 제철은 봄과 가을이다. 봄철 어린 순은 부드럽고 나물로 먹기에 적합하고,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뿌리를 캐서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한다.
꽃이 피는 여름철 뿌리는 목질화돼 딱딱하고 약효가 줄어들기 때문에 채취를 피하는 게 좋다. 뿌리를 캘 때는 돌밭이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아 힘들 수 있다. 뿌리는 크고 탐스럽다. 도라지와 더덕을 섞은 듯한 모양이라 캐는 보람이 크다.
요리법은 다양하다. 봄철 어린 순은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고추장, 간장, 참기름을 넣어 양념하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퍼진다. 뿌리는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차로 우려낸다. 생뿌리는 얇게 썰어 샐러드에 넣거나 살짝 볶아 반찬으로 낸다.
말린 뿌리는 물에 달여 약용 차로 마시며, 발효액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꽃은 샐러드 장식이나 튀김 재료로 활용된다. 씨앗은 기름을 짜 건강기능식품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달맞이꽃 종자유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나물로 먹는 게 비교적 최근 알려졌지만, 서양에서는 로제트 상태의 뿌리를 캐서 채소처럼 먹어왔다.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뿌리를 캐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맛은 독특하다. 뿌리는 달짝지근하면서도 씹을수록 아린맛과 매운맛이 살짝 올라온다. 이 때문에 처음엔 독성이 있는 게 아닌가 오해할 수 있지만 달맞이꽃엔 독성이 없다. 어린 순은 고소하고 부드럽다. 종자유는 고소한 기름 맛이 나며, 건강식으로 섭취할 때 부담이 적다. 전체적으로 강렬하지 않은, 은은한 풍미가 특징이다.
건강을 품은 달맞이꽃의 효능
달맞이꽃은 식재료를 넘어 약재로도 주목받는다. 한약명으로는 월견초 또는 대소초라 불리며, 씨앗은 월견자라고 한다. 뿌리, 줄기, 잎, 꽃, 씨앗 모두 약용으로 쓰인다.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성이 없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주요 성분으로는 올레인산, 리놀렌산, 감마리놀렌산 같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특히 감마리놀렌산은 모유와 달맞이꽃에만 있는 귀한 성분으로,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낮추고 혈압을 조절한다.
혈액순환 개선 효과가 뛰어나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뇌졸증, 심근경색 같은 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여성 건강에도 유익하다. 종자유는 갱년기 증상, 생리통, 생리불균형을 완화하며, 여성호르몬 균형을 돕는다.
남성에게는 혈액순환 개선으로 성 기능 향상에 기여한다. 항염증 작용 덕분에 아토피, 습진, 여드름 같은 피부질환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뿌리는 근육통, 신경통, 류머티즘 완화에 좋으며, 골다공증 예방과 연골·관절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종자유는 면역력 강화, 당뇨 개선, 간 기능 향상, 항암 작용, 피부 노화 방지, 체지방 감소에도 기여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달맞이꽃을 피부염이나 종기 치료에 썼고, 한방에서는 뿌리를 약재로 달맞이꽃 종자유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식약처는 종자유의 1일 섭취량을 160~300mg으로 권장한다. 하지만 과다 섭취 시 복통, 설사, 두통이 생길 수 있으니 적정량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간질, 발작 장애, 출혈성 질환, 임신, 모유 수유 중인 경우 전문의와 상담 후 섭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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